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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대의작가들/회화

    오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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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소개
     

    오방색의 ‘풍수’ 화가 오승윤은 1939년 송도(개성)에서 태어나 해방후 부친 오지호화백을 따라 광주로 내려왔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제5회 목우회 공모전](1969) 최고상, [제5회 전남도전](1969) 최고상, [제25회 국전](1975) 문공부장관상, UN IAEWP 세계평화교육자상(2004)을 수상했고, 1970년(광주), 1977(광주 전일미술관), 1978(광주 전일미술관), 1979(서울 신문회관), 1980(광주 현대화랑 초대), 1984(서울 롯데미술관), (파리), 1996년(서울 선화랑) 개인전을 가졌다.

    현대미술초대전(1983-85, 87, 90, 92,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1986, 국립현대미술관), 동서양화20인초대전(1988, 광주 남봉미술관), 한국미술-오늘의상황전(1990, 예술의전당), 92서울미술대전(1992, 서울시립미술관), SALON D'AUTOMNE 초대출품(1993, 파리), 한국자연대전(1993, 서울시립미술관),  UNESCO 한국50인전(파리 UNESCO본부), 서울국제현대미술제(1994, 국립현대미술관), A. BONNEFOIT / 오승윤 2인전(서울ㆍ광주 신세계갤러리), 선묘와 색채의 향연(1996, 광주 신세계갤러리), 아름다운 성찬(1998, 국립현대미술관), 정부 소장미술품 특별전(1998, 국립현대미술관), A. BONNEFOIT / FABIO CALVETTI / 오승윤 / SUGIYAMA-YU 3인 순회전(2000-01, 이탈리아, 프랑스, 한국, 일본), 한일현대미술전(2001, 일본), 한불작가구상회화특별전(2002, 서울ㆍ광주ㆍ인천ㆍ부산ㆍ대구), SALON DE PRINTEMPS(2003) 등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예술대학 교수와 한국자연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전남도전 심사위원(1974-77), 국전 추천ㆍ초대작가(1977-81), 원로작가 회화전 운영위원(1992), 서울미술대전 추진위원(1992), 제4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1984), 한국자연대전 운영위원장(1993) 등을 역임했다. 2006년 1월 13일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작가의 작품세계

     

    無原罪의 仙境

    신 항 섭 / 미술평론가


    그의 작업은 전체가 오방정색과 그 간색이 중심이 된다. 이처럼 오방정색과 그 간색 을 중심으로 하다보니 형태는 자연스럽게 단순화되기에 이른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세계, 결점이 없는 완벽한 세계, 무원죄의 세계인 것이다. 인간과 동식물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영원한 조화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는 바로 음양오행사상이 지향하는 세계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누드라든가, 전통적인 복식의 신부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과 일체가 되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오방정색이 우주와 대자연의 섭리를 설명하고 있듯이 화면의 중심에 놓이는 인간은 자연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여성 그리고 여체는 모태로서의 상징성을 지닌다.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모태는 모든 생물체의 본원인 흙, 즉 대지를 의미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은 고래로부터 다산의 상징이었듯이 그의 작품에서 여성 또는 여체는 풍요와 행복과 사랑과 아름다움과 평화의 상징이다…

    그의 작품은 소재가 무엇이든지 또는 소재의 배열방식이 어떻든지 간에 지극히 정적이다… 본원적이고 이념적인 것을 응시함으로써 영원한 초월적인 가치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게 된 것이다.그 결과가 음양오행에 따르는 오방정색과 간명한 최소한의 형태를 갖는 평면적인 이미지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런데 그가 하나의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을 보면 의외로 직관적인 방법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의 경우 영감보다는 지적이고 논리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는 30년간 사실 주의 미학에 충실해온 결과일 것이다. 오방정색을 사용하여 '風水'연작을 발표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 이전까지 사실주의로 일관해 왔다… 자연을 관조하고 사유하는 과정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을 받아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삶의 환희가 넘친다. 이는 긍정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단순히 색채가 밝고 강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림이 과연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인가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이기에 그렇다. 마주하고 있으면 행복한 감정이 솟아나는 연인과 같은 그림이 되어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이 그 자신으로 하여금 그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유도하는 것이다.



    오승윤의 예술

    로제 부이오 Roger Bouillot

     

    1981년에 오화백은 일종의 안식휴가처럼 파리에서 체류했다. 그는 이 파리 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La Grande Chaumiere)의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면서 나체 연구에 할애했다…

    한국으로 귀국 후 오 화백의 예술세계는 10여 년간에 걸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색상과 그림 그리는 방법 자체에서 이루어진다. 단색의 색조의 시적 사실주의 표현에서 화려한 색상의 양식화된 명상적인 표현으로 바뀐다. 과거의 한국에서 태고의 한국을 탐구하는 그의 새로운 경향의 주제는 풍수지리설과 민속적인 것이 섞인 마술적, 즉흥적 사유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화법의 변화로 인한 그의 독창적인 형태의 그림은 물, 불, 대기, 땅을 통한 한국인들에게 아주 친숙한 상징의 세계와 대기, 땅과 광물, 식물, 동물을 통한 전통적 요소를 재현한다. 또한 촌락, 강가, 산, 구름들이 이와 함께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층을 이루는 그의 작품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면서 유연한 아라베스크 모양과 가볍게 윤곽을 드러나게 하는데, 그것은 한국 논두렁이 리듬을 상기시킨다. 많은 경우 작품의 아래 부분은 원초적 물로 시작해서 어머니인 대지, 인간을 보호하는 산, 그리고 하늘이 그려진다. 그리고 중앙에는 한국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 또는 나체의 여인이 표현되는데 이 여인은 아마도 한국 정신(혼)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영감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오화백 자신이 "풍수" 시리즈라고 명명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이 시리즈에서 (중국어 "펑쉬이") 바람과 물의 마술적 정신과 그에 근접함을 느낀다.

    내가 "풍수" 시리즈에서 가장 놀란 것은 이 작품이 갖는 예외적 기념비적 가치이다. 이 작품에서 표현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은 서로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작품이 내재한 순서, 질서 때문에 관람객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아래에서 위로, 또 점차로 대지에서 강가로 그리고 작은 언덕에서 높은 산으로 이동하고, 마침내 하늘 저 멀리 있는 구름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오 화백의 "풍수" 시리즈는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독창성을 갖고 있다. 그는 작품에서 진정으로 화해하기 어려운 요소 즉 마술적, 전통적 사유, 영속하는 질서, 정신의 세계를 종합하여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작품들은 오 화백의 새롭고 독특한 조형, 예술세계를 구현한다. 오 화백의 작품은 처음 보았을 때, 쉽게 이해되면서도 또한 쳐다볼수록 명상의 여러 단계를 느끼게 한다.


     



    연락처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275번지


     

    오승윤|나룻배|1974|
    오승윤_나룻배_1974_

    오승윤|풍수|2001|
    오승윤_풍수_2001_

    오승윤|풍수||
    오승윤_풍수__

    오승윤|풍수||
    오승윤_풍수__

    오승윤|풍수|2004|
    오승윤_풍수_2004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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