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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대의작가들 - 조각/입체조형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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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소개

    이기원은 1962년 광주 출생으로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1999
    년부터 2005(광주 롯데갤러리), 2015(광주 무등갤러리) 등 모두 16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광미공10주년기념전](98,광주시립미술관] [그룹새벽10주년기념대작전](00, 광주 인재갤러리) [광주청년미술의 현황전](00, 광주 신세계갤러리)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00, 대구문화예술회관) [2001일탈전](01, 광주 나인갤러리) [광주청년작가회전](01, 광주시립미술관) [소나무회대작전](01, 광주 인재갤러리), [한국의 꿈](02, 파리) [남북의 길](02, 조형갤러리) [1회 환경미술제](2005, 광주 롯데갤러리) [2005세계박물관문화박람회-시각의 전환](05, 고양 한국국제전시장), [소나무-광주에세이](2007,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세화전](2013, 광주 향토음식박물관), [80년대 광주 민중미술전](2013, 광주시립미술관), [세월호참사추모전](2014, 광주 메트로갤러리), [아트광주](2015,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최재영 이기원 2인전](2016, 광주 무등갤러리) 등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미술대전·광주광역시전·충남도전 운영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미술협회 이사이면서 광주미협 부회장이고, 아트그룹 소나무, 그룹 새벽, 전남조각회, 남도조각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세계

    그는 광미공의 ‘오월전’으로 대표되는 정기 ․비정기전과 민중민족미술을 지향하는 안팎의 여러 기획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90년 두 번째 ‘오월전’에서 ‘임산부의 죽음’을 발표했다. 

    ‘광미공’ 사무실이 두암동에 있는 아파트 지하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비전향 장기수였던 서옹열 선생에게서 철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집체’ 라고 불리웠던 ‘집단창작’ ‘공동창작’에 참여했다. 그는 97년 광미공이 해체될 때까지 광미공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 시절 그는 ‘5․18연작’을 대표작으로 꼽는다. 그 외 ‘해방공간’ ‘오월전사’ ‘대동세상’ 등의 부조연작과 ‘땅의 역사’ ‘한숨’(93) 등의 작품이 있다.

    이기원은 그 시절의 집단창작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과연 집단창작이라는 형식의 예술방법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미술이 선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숱하게 많은 예술가와 비평가와 지식인들이 질문하고 토론했다. 그리고 역사는 흘러갔고 우리 앞에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입이 열려있다. 그러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율법을 어기고 총을 들어야만 했던 사제들처럼 80년대 민중미술 또한 미술이 단순한 기술이 아닌 미학적 존립기반을 갖는 예술이 되기 위한 한톨의 씨앗이었다고 긍정해야하는 시점이 왔다.

    이기원이 자신의 작품의 미학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즈음, 워커힐미술관에서 독일의 여성화가인 ‘케테 콜비츠’의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케테콜비츠도 “나의 작품 행위에는 목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기원이 본 것은 작품의 목적성이 아니라 형식이었다.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보는데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빨리 작업실로 가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인 김수영은  ‘힘으로서의 시의 존재’ 라는 글에서 “시는 온 몸으로, 바로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라고 썼다.

     이기원은 작업실에서 흙을 만지면서 비로소 개인 이기원으로 돌아온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가족을 만난다. 그리고 그는 98년 서울 나화랑과 광주 궁동갤러리에서 ‘가족’이라는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가족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담은 ‘다시만나는 기쁨’ ‘등 뒤에서 잠든 아이’‘아버지의 바다’‘따뜻한 가슴’ 등을 발표한다. 그 후 ‘얼굴이라는 경전’(1999), ‘모성-유희의 인간’(2000), 샤론의 꽃(2001), ‘모성-생명력’(2002) 을 연달아 발표한다. 몸에서 작품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2005년 롯데화랑 창작지원으로 이루어진 ‘디스토피아전’에서 그의 작업은 조각작업에서 설치미술로 확장된다. 정보화시대에서 개인의 존재에 대해 질문한다. 그는 ‘디스토피아전’에서 ‘DNA 생체실험’, ‘유니포미티’, ‘빅브라더’, ‘생명의 숨결’, ‘잠식’ 등을 발표했다.

    이기원의 관심은 항상 인간이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은 적은 없었다. 그가 산업폐기물을 이용해서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을 하도라고 결국은 인간에 대한 애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결국 그가 기다리는 것은 유토피아다’


    - 백은하(소설가)의 미술읽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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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임산부의 죽음|1990|
    이기원_임산부의 죽음_1990_

    이기원|응시|1998|
    이기원_응시_1998_

    이기원|기억의 조작|2005|
    이기원_기억의 조작_2005_

    이기원|유니포미티|2005|
    이기원_유니포미티_2005_

    이기원|세상으로 나아가다|2015|
    이기원_세상으로 나아가다_2015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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