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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입체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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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대의작가들 - 조각/입체조형

    김행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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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소개
     

    1942년 전남 고흥 출생으로 서라벌예술대학 미술학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6년부터 2007년까지 전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95년 서울프레스센터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제17회 [국전](1969) 문공부장관상과 두 번의 특선(1970, 1972)을 수상했고, 남도조각회전(1979- ), 오사카 한국문화원 초대전(1999), 광주ㆍ가고시마 미술교류전(1999, 광주시립미술관), 제80주년 3.1운동기념 초대전(1999, 동호갤러리), 99중국예술전시회(1999, 중국 북경 국제전시관), 국제조각교류전 및 제15회 한국조각가협회전(1999, 서울시립미술관), 전남조각회전(인재갤러리), 밀알회전(2000, 서울조형갤러리), 한국조각가협회전(2001), 명지원예술축제(2003, 담양 명지원), 남도의 조형-묵상의 거울(2003,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개관기념전), 곽충심ㆍ김행신 부부작품전(2003, 광주 롯데화랑), 여수아트페스티벌(2006, 여수 오동도), 정년퇴임 기념전(2007, 광주 대동갤러리), 남도미술을 찾아서(2008, 광주시립미술관), 나의 살던 고향은(2009, 광주 금호갤러리 개관기념전) 등의 전시에 출품하였다.

    제2군하사관학교 승전탑(1969), 육군포병학교 포병탑(1980), 해남 토말탑(1987), 88올림픽 광주조형물(1988), 삼성생명 광주지점 환경조형물(1988), 순천 팔마공원 황우상(1991), 광주 대신증권 황우상(1991), 광주 대한생명 조형물(1992), 광주 무등빌딩 환경조형물(1992), 등을 제작하였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1985, 92),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학장(1991),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1994), 예술총감독 추천위원(2002), [전남도전] 심사위원장(2005) 등을 역임했고, 현재 국전출신작가회, 목우회, 전남조각회, 남도조각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2019년 10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작가의 작품세계
     

    주술呪術과 기원祈願이 농축된 체험의 미학


    작가 金行信은 어린 시절부터 주경야독을 하면서 고학으로 오늘의 위치를 다진 입지전적 인물이다. 중학시절부터 그의 작업을 직접 지도하고 옆에서 지켜보고 온 스승으로서 제자를 논한다는 것이 자화자찬을 하는 것 같아서 이 글을 쓰는 것을 고사(固辭)했지만 이번 전시가 그의 첫 작품전이기도 하고 간곡한 부탁에 거절할 수 없어 격려의 뜻으로 이 글을 쓰게 됐다. 옛 말에 스승만한 제자가 없다. 훌륭한 스승은 있어도 성가(成家)를 한 제자는 드물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진의(眞意)는 정신은 스승을 쫓되 작품세계만은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아무리 그 작품이 스승을 닮을 만큼 좋아도 결국은 스승의 아류일 뿐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김행신은 스승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만들어 낸 작가이며 나름대로 자기세계를 구축해 낸 조각계의 중견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주어지고 있다. 金行信 작품의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을 해보면, 첫째 선(線)과 면(面)의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曲線)으로 표면처리가 되어 있으면서도 음양감(陰量感)이 혼용된 빛의 투사로 하나의 착시(錯視)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이미지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과장이나 생략과 축쇄(縮刷)를 배제한 사실에 충실 하려는 경향이 강한 작가다. 부언을 하면 표현질의 극대화를 위해 주변을 파고(刻) 들어감으로서 광선을 이용한 양각(陽刻)현상의 돌출효과를 상승시키고 있으며, 둘째 주술(呪術)적이면서도 어떤 종교에 귀의하고 싶은 간절한 바램이 주제로 농축되어 있음을 발견 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세속적인 물욕이나 출세 지향성의 공리적인 이해타산보다는 인간애의 사랑과 평화를 갈구하는 기도가 표현상의 감성(感性)이나 정신으로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 그의 작품은 소박한 질감의 어머니상이나 여인상, 가족의 사랑 등 한국전래의 토속적인 향수나 서정이 배어 있고 조각작품에서의 한국성을 김행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날씬하고 고운 몸매의 관능적인 여인상이 아니라 호미로 밭을 매고 일구는 풍만하고 우직한 한국 농촌여인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배경들은 그의 어린 시절의 삶의 추억들이직접 잔상으로 남아 이러한 소재들이 작품의 주제(主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1995년 개인전 서문 중 발췌

     



    연락처

    광주시 북구 우산동 현대 아파트 107동 1502호

    062-262-0608


    김행신|달맞이|1976|
    김행신_달맞이_1976_

    김행신|사색|1978|
    김행신_사색_1978_

    김행신|상하의 고뇌|1978|
    김행신_상하의 고뇌_1978_

    김행신|무등의 여인|1992|
    김행신_무등의 여인_1992_

    김행신|불심|1996|
    김행신_불심_1996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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