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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삐 다녀 온 고흥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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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대숲바람 작성일05-04-25 17:32 조회4,3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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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가사 쪽으로 답사를 두어 번 다녀왔던 고흥은 만만찮은 거리 때문에 쉽게 나서지질 않는 곳이다. 그렇다고 꽤 오래 전부터 혼자서 정해 놓은 숙제 때문에 계속 차일피일 할 수만은 없었다. 격주로 쉬게되어 있는 토요일 아침, 8시 전에 일찌감치 혼자서 홀가분하게 고흥으로 출발했다. 화순 읍을 지나 사평쪽을 지나고 있는데 뜸끔없이 직원한테서 전화가 와 높으신 분께서 오후 2시에 회의를 소집했다 한다. 비상소집도 아니고... 도중에 차를 돌려야 하나마나 갈등을 좀 했지만 돌아가고나면 언제 또 나서질지 알 수 없어 오락가락하는 사이 차는 이미 돌아가기엔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 가능하면 회의 시간 전에 마치고 돌아가리라 막연한 시간계산만 되풀이했다.
    이런 길은 주말에 드라이브 삼아 마음 편한 친구를 옆에 태우고 천천히 봄 풍경을 즐기면서 유람하듯 해야 하는데 나들이 기분을 낼 처지는 못되어서 마음만 바빠지고 자연 페달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물론 벚꽃이고 개나리고 이미 봄꽃들 대부분이 진 뒤인데다 주암호 물은 갑자기 허기가 느껴질 만큼 바닥을 보이고 있지만 연푸른 생명의 빛깔들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구불거리고 좁은 길을 따라 꽤 달려 벌교를 넘어 고흥반도로 들어서자 마치 또 다른 세계로 들어선 것처럼 갑자기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 속도를 더 붙일 수 있었는데 그렇게 꽤나 긴 거리를 달려야 했다. 표지판을 따라 계속 직진하다보니 도화면소재지에 이르는데 광주에서 170여km 거리에 2시간 정도가 걸렸다. 도화면소재지에서 다시 길을 확인한 다음 수퍼 주인이 꼼꼼이 일러준대로 지죽도 방향으로 7km쯤을 더 들어가는데 어촌산간 벽지까지도 도로포장이 잘돼있어 운전은 참 편했다.
    구비길 고개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가 아차 지나칠뻔한 고개 아래 오른쪽에 낡은 스레트 지붕에 현수막을 내려뜨린 아담하고 낡은 폐교가 보인다. 마당 같은 운동장을 끼고 마을 공회당 정도의 작은 크기의 폐교 미술관인데 골짜기의 정적을 깨고 들어서는 낯선 자동차에 털복숭이 개들이 경계 반 반가움 반으로 다가와 바지가랑이에 코를 비벼댄다. 개인전을 하고 있는 김규완씨 작품이 전시실 입구부터 빼곡이 걸려 있는데, 아직 늦은 잠 기운이 덜 깨인 주인네(박성환 관장)가 어색한 눈인사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가 음악을 켜 놓고 나간다.
    교실을 전시실로 손을 봤는데 전체적으로는 황토물을 들이고 창들을 최대한 가려 전시벽면들을 만들었다. 전시실 가운데는 묵직한 주물난로와 두꺼운 나무 차상과 다기가 놓여있고, 소품처럼 놓인 장고와 북, 가야금, 대금 등과 함께 황토물을 들인 방석들이 가지런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국악기와 함께 전자올갠과 전기기타, 수 백장의 묵은 레코드판과 CD, 꽤 출력이 높을 것 같은 큼직한 스피커 등이 주인의 음악취미를 짐작케 하면서 아무 때고 문화이벤트를 벌여도 괜찮을 듯 하다. 복도 벽에도 작품들을 걸 수 있는데, 낡은 풍금 두 대가 귀여운 꼬맹이의자와 함께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안쪽 교실은 황토염색으로 만든 침구세트와 복주머니, 조각보 등이 소품액자 그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안쪽까지 천천히 둘러보고 나오는 사이에 주인은 어느새 전시실 차상에 따뜻한 물을 준비해 두고 차 한잔하고 가라며 자리를 권한다. 어제 서울에서 내려 온 작가와 늦도록 상대하다 잠이 늦었던가 보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순천에서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주인은 이런 공간을 공들여 가꾼 문화인답게 소박하고 심성 좋으면서도 자기주관이 또렷한 사람답게 생겼다. 그야말로 문화를 꺼리로 한담을 나눠 볼만한 상대와 분위기지만 마음이 급해서 우려낸 한 사발 차를 다 못 비우고 일어나 그가 작업실로 쓰는 옆 공간과 운동장가의 염색공방, 잡풀 속에 묻혀 가는 '도화남단장분교'라 새겨진 옛 학교 정문의 바깥쪽까지 서둘러 둘러봐야 했다. 박 관장의 운이 좋은 건지, 그런 조건을 잘 찾아 이용한 건지 그가 작업실로 쓰는 공간이나 아내 김혜경씨의 염색공방 가건물들은 이 곳 고흥반도 끝 구암리와 지죽도를 잇는 연륙교 공사 때 현장사무소와 창고로 썼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아 문화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광주로 출발해야 회의시간에 맞출 수 있는 시간이 돼버렸다. 전파가 닿지 않는 도화헌을 떠나 다시 도화면소재지로 나와 전화를 했다. 다행히 꼭 회의에 참석치 않아도 괜찮다는 얘기에 다른 쪽 남포문화예술원을 가보기로 했다. 한번 내려오기가 쉽지 않은데 한군데를 남겨두고 갈 수는 없었다. 큰 종이에 지도까지 그려주며 꼼꼼히 설명해 준 주유소 주인의 안내를 따라 30여분쯤 동쪽으로 차를 달려 영남면을 찾아가는데 정말 주유소 주인은 갈림길의 각도와 가드레일 설치부분들까지 다 일러주어 감탄스럽기조차 했다.
    영남면소재지에 있는 남포문화예술원은 도화헌에 비하면 꽤 큰 폐교다. 꽤 넓은 운동장을 끼고 팔영산자락 아래 자리한 1층에 여섯 개, 2층에 2개의 교실이던 것을 재단장한 것이다. 역시 텅빈 운동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직원이 입구까지 나와 전시실을 안내해 준다. 깨끗하게 단장된 전시실에는 얼마 전 끝난 개인전에 이어 광주 전남지역 연고 중진 중견작가들의 작품이 전시 중인데, 기획전이나 대관전이 없을 때는 원장의 소장품 중 일부씩을 순환전시한다. 작가들의 지명도나 비중도 그렇지만 작품들의 수준도 그냥 시골유지가 이것저것 끌어 모은 정도는 아니다.
    개관 후 한국화하는 ㄱ씨가 학예실장을 맡아왔는데 대만 개인전 준비 때문에 얼마 전 그만두어 공석중이며 예술원 전체운영과 공연 이벤트를 담당하는 기획실장과 직원이 몇 명이 있단다. 복도에는 얼마 전 끝난 한국화개인전의 작품들이 아직 걸려 있고, 안쪽에 공연장이 붙어 있다. 교실을 개조한 거라 층고가 높지 않아 무대와 객석이 거의 평면에 가까운데 영화상영과 공연, 또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예식장으로도 제공해 준다 한다.
    2층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객실을 꾸며놨는데 역시 교실이던 것을 온돌을 깔고 세면 샤워실을 갖추었으며, 그림과 TV, 전화기 등을 갖춰두었으며, 노트북을 가져오는 사람도 전원을 연결해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양쪽에 비어있는 옥상공간은 재원이 허락된다면 옥상정원이나 문화공간을 꾸며볼 계획이란다.
    그밖에 1층에는 학예실, 원장실, 자료실, 수장고, 연수실, 취사실 등으로 공간을 나누어 쓰고 있는데, 연수실에서는 회원제로 한국화기초반을 운영하고 있고, 취사실은 기본 주방기기와 냉장고, 싱크대, 식탁들이 갖추어져 있어 이용객이 필요할 때는 이 곳에서 취사를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건물 바깥으로는 별도로 교실 한칸정도 넓이의 풍물 공연 연습실이 있고, 테니스코트장은 수목원으로 바꿨으며, 운동장 가 꽤 오래된 소나무 동백나무 향나무 후박나무들과 화초들에 더하여 새로 묘목들을 심어 조경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예술원 뒤로는 등산로를 따라 팔영산휴양림과 정상이 연결되고, 앞으로 내다뵈는 해안 쪽으로는 해수욕장과 나로도가 있어 문화 관광 휴양지로도 주변 여건들이 잘 활용될만하다.

    [200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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