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의 교향시, 색채(色彩)로 이룬 판타지아; 화가 우제길 - I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8-11-18 15:55 조회2,33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빛과 어둠의 교향시, 색채(色彩)로 이룬 판타지아 화가 우제길 - I 백은하 (소설가) 화가 우제길(禹濟吉)은 ‘빛의 화가’로 불린다. ‘빛’을 모티프로 한 비구상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은 ‘빛과 어둠의 교향시’라는 아름다운 찬사를 받았다. 우제길의 어린 시절은 역사의 격류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는 1942년 일본 교토(京都)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이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네살되던 해인 1945년, 대한민국이 해방이 되자 고향인 전남 광양으로 돌아왔다. 그는 유년 시절 일본에서의 기억 중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여름밤을 휘저으며 돌아다니던 ‘반딧불’들을 형들이 뛰어다니며 쫓던 모습들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가을밤, 캄캄한 어둠 속, 반짝반짝 빛나던 반딧불은 섬광처럼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귀국 후 신비한 자연의 모습은 환각을 품고 있다. 광양은 그의 탯자리를 묻은 고향은 아니지만, 봄바람, 매화, 아카시아 향기 등 그에게 자연의 기억을 간직하게 해 주었다. 자연이 그의 인생의 첫 번째 기적이라면, 두 번째 기적은 그림이었다. 그는 광주 양림동으로 이사를 와서 학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서중학교에 입학했다. 화가 양수아와의 운명적 만남 1956년 광주서중학교 2학년 때였다. 방학 숙제로 외갓집 고흥에서 외할머니의 쪽물을 사용해 그린 풍경화가 나점석(羅点錫)미술 선생님의 눈길을 끌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우제길은 광주서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사범학교에 진학했는데, 그곳에서 화가 양수아(梁秀雅)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양수아 선생과의 만남은 우제길의 예술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양수아는 한국 앙포르멜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비구상회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화가다. 캔버스에 물감을 흘리고 뿌려서 조형해내는 양수아의 앙포르멜 작품들에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우제길은 1961년 장성군 산간벽지의 북상서초등학교에 부임한 후 11년동안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한다. 1963년 군에 입대했고, 1965년 베트남에 사병으로 참전, 그리기를 계속했었고, 귀국 후 ‘베트남종군 귀국전’을 개최했다. 우제길의 작품 세계는 1967년, 변화를 시도해 보려는 징후가 뚜렷해진다. <붉은 띠의 추상>은 단순한 선과 평면이 주조를 이루며 색의 배치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앙포르멜적 자유분방함과 절제된 선(線)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강용운이 우제길의 ‘수채화 전시 평론’에서 그의 작품 <추(秋)B>에 대해 포비즘적 특성과 운동감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대의 미술사적 경향을 의식하고 있다. 1960년대는 그 점에서 우제길의 작품 세계는 분명히 모색단계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제길은 1972년 중등학교 준교사 검정고시에 응시해 자격증을 획득했다. 1973년부터는 광주를 기반으로, 중등학교 미술교사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병행해간다. 작품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인생도 성숙해 간다. 당시 전일빌딩 뒤에는 ‘도깨비대학’ 이라고도 불렸던 주점 ‘오센집’이 있었다. 당시 ‘오센집’은 광주에 살고 있던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다. ‘오센집’에는 세발낙지와 막걸리, 김치가 언제나 예술가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오지호, 최용갑, 양수아, 강용운, 배동신, 임직순, 박상섭, 최종섭, 우제길 등이 드나들었다. 오센집은 함께 웃고 떠들고 왁자지껄했지만 단골 화제는 미술과 예술이었다. 당시 전남일보 신문지면을 통해 진행된 오지호와 강용운의 구상 미술, 비구상 미술의 첨예한 논쟁은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제길은 이곳에서 미술에 대한 격정적인 열망과 현실적인 고통을 삭이며 젊은 시절을 불태웠다. ‘에뽀끄(Epoque)’ 미술그룹 발족 우제길은 1969년 광주에서 창설된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모임인 ‘에뽀끄 (Epoque)그룹’에 가입하면서 그의 예술 인생에 커다란 변혁기를 맞는다. 당시 광주는 비구상 미술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광주에서 ‘에뽀끄’의 발족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에뽀끄’ 가입은 우제길 예술 세계의 작가적 태도와 진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있는 사물을 그대로 그린다는 것에 대해 회의도 있었고 성격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양수아 선생님의 영향도 컸습니다. 비구상 회화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 창작의 본질적인 매력 같은 것에 끌려 ‘에뽀끄’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라고 밝혔다. 당시 이 선택은 모험적인 것이기까지 했다. 작품 발표의 기회를 갖기조차 어려웠다. 작품이 팔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우제길은 자신이 선택한 그 길에서 미술혼의 싹을 틔웠고 미학적으로 확장된 작품세계를 열어갔다. (계속)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