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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과 바람의 시간 / 화가 한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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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06-09-18 23:14 조회3,3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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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과 바람의 시간

    화가 한부철의 작품세계

    백은하 (소설가)


      적막하다. 비가 내린다. 가을이 깊어질 것 같다. 전남대 정문 정다방 3층에 있는 화가 한부철의 작업실에서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리처드 막스의 ‘Now and Forever'를 들었다. 현재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까? 화가 한부철은 백련이 피어 있는 연못가를 걷고 있다. 8월의 새벽이다. 지금이 영원할 수 있을까?
     

      화가 한부철이 그리고 있는 것은 백련이 피어나는 순간, 떨어지는 순간이다. 그는 어린시절 바다를 보며 자랐다. 일렁이는 바다는 먼 곳을 향하게 했고, 어디론가 떠나는 꿈을 꾸었다. 막연하게나마 그림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중1때였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인생의 등대같은 미술 선생님을 만나게된다. 그 후 그는 조선대 회화과에 입학을 하면서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한부철이 종이 앞에서 붓을 쥐고 앉아 있은 지 어느덧 십여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고, 그도 많이 변했다. 그가 수채화를 처음 시작한 것은 대학 3학년때였다. 생래적으로 유화 물감의 기름기가 몸에 맞지 않았다. 수채화를 그리던 중, 그는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깨닫게 된다. 화가들이 수채화를 유화로 가기 위한 스쳐가는 여정 정도로 생각하지만, 수채화에는 자신이 개척해야 할 많은 영역들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때부터 그는 종이에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대학 때 그는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베토벤의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가장 좋아하는 곡이 ‘합창’이었다. 궁극적으로 그가 화면에서 도달하고 싶은 경지이다. 베토벤의 합창처럼 웅장하고 장엄하면서 인생의 희, 노, 애, 락이 담겨있는 예술 작품말이다. 베토벤의 음악은 그의 인생처럼 다채로운 이야기와 정조를 담고 있다. 드라마틱하다. 그는 수채화라는 재료가 과연 그렇게 드라마틱한 커다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재료인지 고민하고 거듭 고민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유화보다는 수채화가 맞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수채화를 받아들였고, 수채화로 작업을 한 지 십년을 넘어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들은 얼핏 보면 유화 작품같은 질감과 느낌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가 실제 사용하는 종이를 보여주었는데, 캔버스천처럼 단단한 질감이 느껴졌다. 그는 그동안 다섯번의 개인전을 통해서 작품 세계를 펼쳐왔고, 2004년에 ‘호수갤러리’와 ‘무등갤러리’에서 『 빛․ 바람 ․ 시간 그리고 형상』전에서 <空> <純> <空-바람>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空>은 100호가 넘는 대작이다. 우물같기도 하고, 심연같기도 한 공간으로 연꽃 하나가 낙하하고 있다. 시간의 숨결이 느껴진다. 인생 하나가 깊고 푸른 우물 속으로 낙하한다. 공간은 소용돌이처럼 중심부로 중심부로 하나를 이룬다. 중력같기도 하고 블랙홀같기도 하다.  작품의 제목은 <空>이다. 한부철이 말하고자 하는 <空>은 무엇일까?


      인도 수학에서 수냐는(sunya)는 영(零)을 의미하는 말로, 없는 것, 비어 있는 것, 결핍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없다[無]는 의미로 사용될 때 이것은 존재 자체의 부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것은, 실체, 본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나타낸다. 존재하는 것의 그림자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의 본체가 없는 것이다. 생의 모든 것이 환영일까.


      그러나 우리는 백리향에서 나는 향기를 맡을 수 있고, 호랑나비의 날개에서 묻어나는 가루를 느끼기도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 한부철이 말하는 공이란 어느 경지에 이르러야 알 수 있는 경지일까?


      또 다른 작품으로 <純>이라는 작품이 있다. <空>이 연꽃 한 송이의 형체가 있었다면, <純>에는 녹색의 연잎이 나타난다. 연잎은 원형이다. 연잎 위에 물방울이 흩어져 있고 연꽃 한 송이가 있다. 그런데 그 연꽃에서 꽃잎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실상의 연꽃과 연꽃의 그림자, 떨어져버린 꽃잎 한장과,  떨어져버린 꽃잎 한장의 그림자가 화면에 나타난다. 연꽃잎이 떨어지기 직전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空-흔적> 역시 시간의 흔적이다. 눈이 내린 오후다. 눈이 내려있는 신작로에는 트럭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고, 한 사람의 발자국이 있다. 누군가 그 산길을 이미 걸어간 후다.

    그런데 그 길이 소용돌이처럼 원근법이 있다. 저 멀리 저 멀리 가면 색채는 점점 어두워지고 우리가 알 수없는 어떤 세계로 이어진다.


      한부철의 화면에서 <空-생명>은 봄이고, <空-바람>은 가을이다. 그의 화면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순환이 나타난다. 공간들은 정적에 쌓여있고 하나의 사물만이 그 시간 속에 머물러있다. 봄이면 민들레는 싹을 틔운다. 가을이면 나뭇잎들이 바짝 말라서 땅 위로 떨어진다. 나뭇잎은 땅으로 스며든다.


      한부철이 걸어가야 하는 여정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는 2009년 개인전에 발표할 신작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그는 베토벤의 ‘합창’처럼 장엄한 서사를 가진 대작을 하고 싶다고 한다. 지금의 그의 구상을 2009년이 되면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리처드 막스가 노래한다. ‘ Now and Forever ’.


      “내가 머릿속에 가득찬 고뇌로 지칠때마다 / 나의 이성이 한줄기 실가닥에 매달린 듯 위태로울 때 당신은 그 고뇌를 이해해줘요 / 난 갈 길을 몰라 헤매이지만 당신은 이해하는 것 같아요 / 지금은 물론 영원토록 당신의 사랑이 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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