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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탕이 녹는 시간/ 판화가 박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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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06-09-13 01:42 조회3,4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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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탕이 녹는 시간

                                   판화가 박선주의 작품세계

    백은하(소설가)


      홍매화꽃이 난분분 흩날리는 4월, 밴드 뜨거운 감자의 ‘봄바람 따라간 여인’을 들으면서 순천으로 향했다. 초록을 머금은 싱싱한 나무들이 뒷걸음질쳤다. 4월이면 라디오FM에서는 ‘디퍼플’의 ‘APRIL'이 흘러나오고 소녀들은 방송국에 T.S.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를 쓴 엽서를 쓴다. 삶을 시작하는 소녀들이 사용하는 황무지라는 단어에서는 미지의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동시에 느껴진다.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에 등장하는 바다의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 몰라서 바다로 뛰어드는 나비처럼 황무지를 향해 설레임을 안은 발길을 떼는 그녀들이 느껴진다.

     
    판화가 박선주의 작품은 한 편의 고백체 서정시다. 박선주는 1970년에 태어나 자신의 예술세계를 전적으로 지원해주는 어머니의 지원을 받으면서 아카데믹한 엘리트 미술교육을 받았다. 광주예고를 시작으로 미술대학 회화과를 지나서 순수미술학과에서 ‘프리다 칼로 작품의 자아적 특성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을때까지  밀도있는 미술 습작기를 거쳤다.  


      그녀의 작품들은 자신의 여성성, 두려움과 희망, 불안에 관해 독백한다.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서 필자는 미국의 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고백체 시들이 떠올랐다. 실비아 플라스와 박선주는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지만 그녀들은 내부의 몽상과 불안을 예술 작품에 토로한다.


    실비아 플라스와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는 예술적 재능을 펼치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사랑을 하면서 생을 살아갔던 여성 예술가들이지만 결국 생을 자살로 마감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작품은 고백체 서정시처럼 작품 곳곳에서 사적인 자아의 절실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박선주가 처음 판화를 접한 것은 대학 2학년때였다. 그녀는 회화과 학생이었고 판화는 부전공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선배의 공방에서 판화 작업을 보았고, 선배의 지도를 받으면서 ‘아쿠아틴트’ 기법을 익힌다. 회화보다 판화가 자신의 기질과 잘 맞았고 그녀는 아쿠아틴트 기법의 작품들로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다. 그녀는 열심히 작업을 했지만, 내부에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솟구쳤다.


      이십대가 끝나갈 즈음 그녀는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파리 5구에 있는 스튜디오를 얻어서 생활하면서 피카소, 달리 등이 작업을 했던 ‘17공방’과 ‘63공방’에서 판화를 공부하면서 ‘파리 아메리칸 아카데미’ 석사 과정에 입학한다. ‘파리 아메리칸 아카데미’의 자유롭고 예술적인 환경은 그녀 안에 웅크리고 있던 예술적 재능을 일깨워주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죠엘호슈’교수를 만나서 ‘뷰린’(Burin)기법을 사사받는다. 그녀는 ‘뷰린’기법을 설명하면서 ‘마름모꼴의 칼’이라는 단어를 말했는데, ‘마름모꼴의 칼’이라는 단어가 시적이라고 생각되었다.


      파리의 자유로운 환경에서 그녀의 내적언어는 발화했고, 2000년 봄 파리에 있는 ‘Academy Art Gallery-Pavillion Val De Grace’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뒤러論’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때부터 그녀의 작품 경향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처럼 내부에서 터져나오는 몽상의 목소리가 시작된다. 아크릴로 작업한 ‘Fear'이라는 작품은 ’두려움‘으로 해석된다. 멀리 구름이 낀 하늘이 보이고 점점 좁아지는 길이 있고 나신의 한 여자가 두려움 섞인 표정으로 서 있다.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때의 두려움 속에서 작업한 작품이라고 한다. 황무지를 옮겨쓰는 소녀처럼 박선주의 두려움은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속에 무엇이건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또한 품고 있다.


      박선주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말하는 ‘세 개의 감성’ 속의 세 여자는 당당하게 자신의 몽상과 불안을 드러내보인다. 그녀들의 몸은 달콤하지 않고, 야성을 품고 있다. 여성의 바기나가 직접적으로 묘사된 ‘Non male!’이라는 작품은 제목이 ‘여성이다’ 가 아니라 ‘남성이 아니다!’ 이다. 여성성 내부에 품고 있는 남성성, 남성성 내부에 품고 있는 여성성. 그녀의 어법은 화합과 화해가 아니다. 드러내기다. 여성의 내부에 품고 있는 불안과 꿈들, 이야기들. ‘세 여자 이야기’, ‘두 여자 이야기’라는 작품도 있다.


      그녀의 작품은 시적 상징들을 품고 있다. 남성성을 상징하는 ‘곤충’은 공격적이거나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곤충들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관능적이다. 곤충들은 끊임없이 실(絲)을 생산하고 그 실로 여성을 감싸 안는다. 여성은 실에 감싸인 채

    진정한 휴식에 빠져든다. 유토피아로 상징된 공간에서 휴식하고 있는 여성들의 등은 평화롭다. 그녀는 한국에 돌아왔고 ‘유토피아’라는 판화 작품으로 ‘국제 공간판화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이제 진정한 판화가로의 시간들이 펼쳐진 것이다.


      판화가 박선주가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 보여줄 몽환적인 화면들, 그리고 여성적인 독백의 화면들. 그녀의 화면이 독백이 되지 않고 ‘다이알로그’가 되어서  진정한 소통을 이루어내는 날, 우리는 날아가던 잔꽃무늬 손수건이 나비가 되는 예술적 체험을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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