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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에 띄운 러브레터- 조각가 정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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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08-07-24 12:59 조회3,5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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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에 띄운 러브레터

    백은하 (소설가)

      

      고대의 이집트인들은 밤하늘을 여성으로 생각했다. 세계의 신화들도 달을 여성으로 생각하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도교에서는 밤을 여성으로 즉 음기와 어둠을 창조하는 마르지 않는 샘으로 보았으며, 밤에서 태어난 음기와 어둠이 다시 양기와 빛을 잉태한다고 보았다.


      정춘표의 조각 작품들은 일몰의 녹색 섬광을 지난 시각, 밤에 태어났다. 밤하늘의 달은 많은 설화들을 품고 있다. 특히 여성들은 달과 교감한다. ‘꽃과 바람과 여인’을 주제로 20여년동안 조각 작업을 해 온 정춘표 작가는 달빛을 받으면서 걸어서 도착한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비로소 창작의 세계를 향해 옷깃을 가다듬는다.

      정춘표 작가의 작품 세계는 화원에서 꽃을 사다가 수반에 꽂은 꽃꽂이가 아니다. 호미로 텃밭을 일구고, 퇴비를 넣어 땅의 힘을 키우고, 봄비가 촉촉히 내린 땅에 씨앗을 뿌리고 달빛과 태양빛을 받아 싹을 틔운 씨앗에 매일 아침 물을 주어 길러낸 장미꽃으로 꽂은 꽃꽂이다. 그만큼 절절하다.

       정춘표의 조형 언어는 진솔하다. 그녀는 2008년 여름 열 번째 개인전을 연다. 10회의 개인전을 하는 동안 그녀는 예술적인 고민, 현실적인 문제들을 모두 스스로 매듭을 풀어냈다고 한다. 그녀에게 ‘예술의 窓’은 아주 슬며시 열려 있었다. 그 작게 열린 窓은 예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광각렌즈였다. 서서 하늘을 보면 그 窓을 통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품은 상상의 세계가 보였다. 그녀는 온 몸으로 그 窓을 밀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정춘표 작가는 1966년 화순 동복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언니 오빠들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광주에 계셨고,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화순 본가에서 살았다. 일출과 일몰, 열리는 새벽의 군청빛과 일몰의 붉은 빛, 가을이 되어 너른 들녘의 출렁이는 황금빛. 자연 속의 아름다운 색감들을 보며 자란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녀에게 서정성을 부여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막내딸에게 사랑을 듬뿍 주셨다. 그러나 혼자서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려야했던 어린 소녀는 근원적인 외로움을 느꼈다. 넓은 집의 황량한 바람 소리. 낮은 나무 책상 밑에 웅크려서 잠이 들곤 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새로 부임한 미술 선생님이 그녀의 미술적 재능을 발견해 주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미술 선생님과 둘이서 진달래가 피어 있는 학교 뒷산에서 스케치북에 풍경을 스케치했다.  조형적인 언어에 눈을 뜬 것은 아니지만 스케치북에 표현되어지는 대상들이 그녀를 매혹의 세계로 이끌었고, 1986년 그녀는 조선대 미대 조소과에 입학을 한다.

      그녀는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지 않고 작업실에 남아서 흙을 주물렀다. 한 작품 한 작품 최선을 다해서 완성해 나갔다. 한달이 걸릴 때도 있었고, 두 달이 혹은 세 달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 작품 한 작품 완성해 나갈 때마다 작품들과 대화할 수 있었고, 성장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다정하고 예쁘고 순종적인 아이였던 그녀가 강인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예술가가 되기까지는 흙을 주무르며 보낸 시간의 힘이 가장 컸다.  그녀는 여성의 인체 조각에 몰두했다. 그녀의 내부의 열기와 환희, 슬픔과 외로움들을 조각들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꿈을 안은 詩的인 아름다운 女性想을 표현해내고 싶었다.


      ‘플로티누스’는 “제신(諸神)과 행복한 사람들의 예지는 문장(文章)으로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미지들에 의하여 표현된다.”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조각이란 자유를 갈망하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 理想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선과 색채를 하나의 언어로 삼아 자기가 사물을 바라보고 느끼는 방식, 존재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 주변의 예술 환경은 급변하고 있었다. 현대 미술은 추상 미술을 넘어서서 개념 미술로 진화한 후였다. 그러나 그녀는 고전 조각이 갖고 있는 드라마틱한 매력에 몰두했다. 장인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그녀만의 ‘아름다운 정원’ 위에 서 있었고, 그녀가 두 발로 내딛고 있는 땅은 점점 더 단단해져갔다.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단단한 지반의 땅이 필요했다. 조각은 신비한 베일에 쌓여 있는 보석이었다. 그 신비한 베일에 쌓여있는 보석을 캐내는 일은 훗날 ‘우리 순이’를 발견해내기까지 완벽한 몰두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녀는 대학원에 입학하고 결혼을 했다. 작업에 완전하게 바쳐지던 시간들은 빛처럼 그녀를 스쳐 지나가 버렸다. 작업과 일상생활을 모두 잘 해내야 하는 환경으로 변했다. 규칙적인 작업 시간을 갖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이 시작됐다. 그녀는 성실한 태도로 작업에 임했고, 1992년 광주 <화니 미술관>과 서울 <동서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개인전에는 인체를 주제로 한  ‘우리 순이’ ‘누가 바람을 본 적이 있나요?’ ‘꿈’ 등의 브론즈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우리 순이’라는 작품의 소녀가 향후 정춘표 작가와 인생을 함께하면서 다양한 여인으로 표현되어졌다. 그녀의 첫 개인전은 성공적이었다. ‘처음으로 사랑을 배웠을 때’의 설레임을 간직한 여인이, 진정한 사랑을 해서 성숙한 여인이 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기도 했다. 정춘표 작가는 풍요로운 대지 위해서 꽃을 피워내는 장미꽃처럼 풍성한 세계를 열어갔다.

      그녀가 작업을 하기 위해 작업실에 도착하는 시간은 밤 열시였다. 낮 시간은 가족들을 보살피는 일에 쓰고, 밤은 그녀가 발견해 낸 시간이었다. 밤 10시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새벽 동틀 무렵까지 작업을 했다.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 는 “밤이여, 내 사랑이여, 말이 시들고 사물이 살아나는 밤이여. 낮의 파괴적인 분해가 끝나고, 진실로 중요한 것들이 모두 완전한 전체로 돌아가는 밤이여. 인간이 자아의 파편들을 다시 조립하고 고요한 나무와 함께 성장하는 밤이여.”라고 노래했다. 그녀는 밤이 주는 고요함, 숲이 내는 소리, 어둠이 내는 소리 등 밤의 소리를 느끼면서 한 작품 두 작품 이야기를 품은 여인상을 브론즈와 대리석으로 빚어냈다. 그녀는 거의 2년에 한벌꼴로 개인전을 계속했다.

      2001년에 열린 세 번째 개인전에는 ‘그리움은 새가 되어’ ‘한울타리’ ‘가슴 사랑’ 등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녀의 작품에는 ‘여인’과 ‘바람’과 ‘새’가 등장했다. 작품 속의 순이는 새처럼 훨훨 날아가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구상 작품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설치 작업을 해야 겠다는 소망을 비밀처럼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녀는 바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2004년 초 프랑스 파리 <Galerie Hedaes Sevira> 갤러리에서 초대를 받자, 그녀는 똑같은 발자국만이 찍힌 단조로운 울타리에서 벗어나 영혼의 비밀이 숨겨진 미경작의 땅을 답사하기 위해 떠날 때가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04년 10월, 프랑스 <Galerie Hedaes Sevira>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의 제목은 ‘물처럼 바람처럼’이었다. 알루미늄으로 조형한 200마리의 북어를 전시장 벽에 설치했다. 북어는 민속 신앙에서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액막이 역할을 한다. 드넓은 바다를 노니던 명태는 生을 너머 북어로 남아, 고사나 제사에서 혹은 들보에 매달려 재마(災魔)를 물리쳐주는 민속 신앙으로 남았다. ‘물처럼 바람처럼’이라는 작품은 그녀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주었고, 또 다른 많은 행운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앞으로도 설치 작업과 구상 작업을 동시에 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 발표되는 신작들은 꽃과 새, 여인상을 모티프로 한 브론즈와 대리석 작품들이다. 조형적인 미학이 확장된 작품들이다.

      화석이 된 빛들의 모자이크, 밤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다. 풀문(full moon)이다. 달빛은 생성을 부른다. 정춘표 작가가 이번 전시회에 내보이는 신작들은 관람객들과 그동안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 띄우는 러브레터다. 기도하듯이 빚어온 아름다운 여인상들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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