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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에 녹아들고 역사 속을 거닐다 - 곽수봉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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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백은하 작성일10-11-23 10:07 조회6,2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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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에 녹아들고 역사 속을 거닐다

    - 한국화가 곽수봉의 작품 세계-


    백은하 (소설가)

      

      남도의 아침의 빛은 토란잎의 이슬 위에서 빛난다. 모든 것을 품어 안을 것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다. 부드러운 남도의 산의 능선과 황톳빛 길, 팔월의 뜨거운 햇빛을 담담하게 받아내는 초록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소나무, 황금빛 들녘. 자연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스스로 자생하고 생명을 잉태하기도 한다.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새벽의 찬란함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이렇게 말한다.

    “어느날 내가 가만히 서서 새벽의 첫번째 빛을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태양은 나무들 뒤로 그의 빛살을 보내주고 있을 때, 갑자기 아침의 빛이 이 세계의 얼굴 위에 믿음의 찬란한 빛을 계시하여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모든 사물과 모든 인간들로부터 저 눈에 보이지 않는 평범함의 베일이 벗겨지고 그들의 최종적인 의미가 내 정신 속에 점점 밀도를 높여갔다. 바로 그것이 아름다움의 의미였다.”


      화가는 평범함의 베일을 벗어던지고 점점 충만하게, 영혼의 힘을 굳건하게 벼려가는 존재들이다. 봄날의 산수유꽃, 여름날의 소나무, 가을날 청정한 영산강의 곡강, 겨울날의 동백숲. 화가 곽수봉씨는 자연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그 진지함을 화면에 옮긴다. 그는 화선지와 먹을 재료로 사용한다. 곽수봉씨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 <청향사일(淸香四溢)><힘찬 강물이 산을 품다> 등의 대작을 출품한다. 


      한국의 미(美)는 단아하고 고아한 아름다움이다. 수묵화는 전통 회화 가운데서도 자연미나 형태미 등 단순한 형식미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작가의 내면 세계의 표현과 아름다움을 중시한다. 수묵화는 호남인의 정서를 대변했던 예술 장르이자 삶을 담아왔던 그릇이다. 남도 수묵화는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8~1893)선생의 화풍을 계승해, 한국의 근대적 남종화와 문인화를 접목시킨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 두 거장이 호남 화맥을 계승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곽수봉씨도 중학교 때 이당 김은호, 남농 허건 선생의 화집을 보면서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지금도 그는 향(香)을 피우고, 벼루에 먹을 갈면서 마음 안에서 그림을 갈무리한다. 화선지에 선을 하나하나 그어가면서 마음의 번잡한 티끌들을 하나하나 버리고, 이상적인 형태미를 지닌 작품을 화폭위에 그려왔다. 동백숲 너머에 존재하고 있을 무릉도원을 꿈꾸면서 화가로서의 이상향을 찾아 정진해왔다.


      곽수봉씨는 호남대 미술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자연을 대상으로 표현한 작품들과 초상화로 나뉘어진다. 수묵화를 포함한 평면 회화는 20세기를 겪으면서 급격한 외형적인 변화를 겪었다. 정신분석학과 언어 철학이 미술에 녹아들면서 미술의 외연의 폭이 급격하게 확장되었다. 곽수봉씨의 작품들도 전통적인 형식미에 현대적인 미학들을 접목시키면서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다.  


      평면회화의 경우는 선과 색채에 감정의 위력을 담아서 자기가 사물을 바라보고 느끼는 방식을 그림의 언어로 표현해낸다. 곽수봉씨는 한국화가 지닌 전통 위에서, 먹색의 현대적인 재해석에 몰두했다. 화선지에 번져가는 다양한 먹색의 침묵을 응시했다. 흔들리는 나뭇결에서 심상의 흔들림들을 응시하고 포착했다. 


      그가 일차적으로 선택한 재료는 화선지와 먹이다. 먹은 단순한 검정색이 아니라, 물에 섞으면 화려한 색깔 못지 않게 깊은 맛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중국 청나라의 화승 석도(石濤)는 “먹의 어두움 속에는 거대한 우주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거대한 우주를 품고 있는 먹색은 단순한 흑백(黑白)이 아닌 동양의 철학을 품고 있다. 그의 화면은 먹색의 담백함과 세련된 색채가 어우러져서, 영혼을 품고 있는 자연을 재해석해 표현해냈다. 


      곽수봉씨의 수묵 채색 작품 <힘찬 강물이 산을 품다>는 부드러운 곡선의 남도의 들녘과 물길을 섬세하게 그려냈는데, 남도만의 유려한 산세를 잘 포착했다. 풍경을 답사한 후에만 느낄 수 있는 실경산수(實景山水)의 아름다움이다. 강물은 유유히 세월 속으로 흐르고, 사람도 흐르고, 사랑도 흘러 흘러 역사 속에 묻힌다. 그의 작품은 남도만의 선과 빛의 느낌을 깊이있게 표현해냈다. 

     
      또한 소나무를 그린 100호가 넘는 대작 <청향사일(淸香四溢)>은 비단에 채색을 한 작품이다. 마치 소나무가 눈 앞에 있는 것같은 품격이 느껴진다. 이 작품은 소나무잎 하나하나를 새기듯이 그려 넣어서 오롯하게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청향사일(淸香四溢)’은 ‘맑은 향기가 사방에 넘치네.’라는 뜻인데, 소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청향(淸香)이 느껴질 정도이다.     바슐라르는 “사물은 우리들의 시선을 대하여 저의 시선으로 응답한다. 사물은 우리가 그것을 무심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무심하게 보인다. 그러나 맑은 눈에는 모든 것이 거울이다. 솔직하고 진지한 눈길에는 모든 것이 깊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결국 “예술이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번역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모든 창작자와 화가 곽수봉씨가 가진 공통적인 질문이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실제의 곡강의 물결과, 곽수봉씨의 화면 위의 곡강의 물결은 두 개의 차원이 중첩된다. 화면은 화가의 영혼의 풍경을 품고 있는 것이다.

      곽수봉씨의 이번 개인전은 더욱더 품격있고 고아한 작품 세계를 찾아가는 화가의 긴 여정위에 있는 한번의 파란(破卵)이다. 앞으로 그의 작품 세계가 보여줄, 그가 찾아낸 무릉도원과 감성적인 비상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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