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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리얼리즘의 한 장, 황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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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 선 작성일26-03-11 11:14 조회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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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재형 <탄천의 노을 11>, 2011, 캔버스에 유채, 259.1x181.8cm

     

    한국 리얼리즘의 한 장, 황재형

     

    2026227, ‘광부 화가로 불리던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대표 화가 황재형이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80년대 강원도 탄광으로 들어가 실제 광부로 일하며 노동의 현실을 몸으로 체험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탄광촌의 삶과 인간의 존엄을 집요하게 그려왔던 작가였다. 황재형의 회화는 단순한 노동의 기록이 아니라 한국 산업화의 그늘에서 살아간 인간 존재의 초상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탄광 노동의 체험적 리얼리즘, 폐광 이후의 검은 자연 풍경, 그리고 인간 존재를 응시하는 인물화로 알려져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노동의 얼굴을 가장 집요하게 그려온 화가 황재형의 작업에는 화려한 색채나 미학적 장식 대신, 검은 탄가루와 땀, 그리고 인간의 체온이 남아 있다. 그가 반복적으로 그려온 것은 풍경도 정물도 아닌 광부라는 인간의 초상으로 곧 한국 근대 산업화의 어두운 심장부를 관통하고 있다.

    우리에게 황재형(1952~2026)1980년대 초반 강원도에 정착해 광부로 일한 경험을 리얼리즘 시각으로 그려낸 광부화가로 알려져 있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황재형: 회천回天'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광부화가의 정체성 안에서 황재형이 집적해온 예술적 성취를 조망한 개인전이었다.

    1952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출생한 작가는 1982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중앙대 재학시절 같은 대학의 박흥순, 전준엽, 이종구, 이명복, 조선대 송창, 영남대 천광호와 함께 민중미술 소그룹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이하 임술년’)를 결성, 활동 중 <황지330>(1981) 작품으로 제5회 중앙미술대전(1982)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지만, 1982년 가을 강원도에 정착하여 광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3년간 태백, 삼척, 정선 등지에서 광부로 일하며 1980년대 민중미술의 현실 참여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쇠락하고 사라져가는 폐광촌과 강원도의 자연 풍경 속에서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인식의 전환을 꾀하였고, 2010년 이후에는 캔버스 위에 머리카락과 흑연 등을 활용하여 탄광촌의 인물에서 동시대 이슈를 넘어 인간성, 시간성, 역사성 등의 인물상을 주제로 작업을 확장해왔다.

    자신의 경험과 탄광의 기억을 그렸던 황재형은 1970~1980년대 강원도 탄광촌을 오가며 광부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의 작품에서 광부는 영웅적 인물로 미화되지 않고 어둠 속에서 겨우 드러나는 눈동자가 담긴 얼굴, 무겁게 굽은 어깨, 작업복에 밴 탄의 질감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작품 안에서 종종 어둠이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빛, 탄광 안에서 헬멧 램프의 반사, 노동자들의 땀에 젖은 피부의 윤기는 인간 존재의 최소한의 귀한 존엄을 상징한다. 이는 단순한 사실주의적 기록을 넘어 존재론적 초상화에 가깝다. 황재형의 작업은 흔히 현실참여미술혹은 민중미술의 맥락 속에서 논의되곤 했었다. 하지만 그의 회화가 갖는 힘은 미술 이론이나 이념적 구호보다는 작가의 경험에서 나오는 표현적 힘이 더 와 닿게 된다.

    그의 붓질은 거칠고 물질적이며, 때로는 석탄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검은 마티에르를 형성하는데 단순히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인간, 노동자들의 노동의 물리적 무게를 회화 속에 이식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은 그림을 본다기보다 작가가 경험했던 광산의 공기를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작품은 미술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시각적 노동사(勞動史)라 할 수 있으며 노동을 기록하는 예술의 회화적 다큐멘트로 설명하고 싶다.

    작가의 예술적 출발점이 된 작품이 바로 '황지 330'이다. 이 작품은 탄광 매몰 사고로 사망한 광부의 작업복을 대작으로 그린 작품으로, 1981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주목받았다.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타자 혹인 인간 부재의 형상이었다. 화폭 안에는 영웅적 광부도, 노동의 서사적 드라마도 사라졌다. 대신 남겨진 광부의 낡은 작업복이 화면 중심에 놓여 있다. 이는 사회와 시대적 노동자의 부재한 초상이다. 작업복의 주인 나아가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히려 노동의 폭력성과 사회 구조의 비극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민중미술의 도상 가운데에서도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선동적 서사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는 점이며 이 침묵은 예술의 윤리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탄광 산업이 쇠락한 이후 황재형의 시선은 광부에서 풍경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다. 그 풍경은 실제가 사라진 노동과 땅의 역사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은 자연이자 땅의 에너지와 시간을 응축한 회화작업으로 평가된다. 이 시기의 작가는 자연 풍경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검은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존재로 묘사하였다. 탄광에서 캐낸 석탄이 결국 이 땅의 몸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검은 풍경 안에 내재 된 인간의 검은 울음은 검은 광산 아래 숨겨진 지질학적 시간과 인간의 내면적 초상이라 전하고 있다.

    2010년대에 작가는 캔버스 위에 머리카락과 흑연을 재료로 사용하는 독특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 작업은 회화와 드로잉, 설치 사이에 놓인 실험적 형식이 된다. 작가 자신의 머리카락은 인간의 몸에서 나온 물질이며 흑연은 탄소, 즉 석탄과 같은 원소다. 결국 작품은 몸과 광산을 연결하는 물질적 은유가 된다. 노동자의 몸, 땅속의 탄소, 그리고 인간의 삶이 하나의 물질적 연쇄 속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황재형의 회화는 결국 빛을 그리기 위한 어둠의 기록이다. 탄광의 깊은 갱도에서 길어 올린 것은 석탄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게이기 때문이다. 황재형의 회화는 단순한 사회적 리얼리즘이나 기록화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노동의 고통을 넘어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인간의 초상으로 등장한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한국 산업화의 이면, 즉 그 시대를 떠받친 수많은 노동자들의 몸과 시간을 증언한다. 작품은 미술관의 흰 벽에서 시작되지 않고 그의 예술은 어쩌면 막장, 즉 탄광의 가장 깊은 갱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작가의 작업에서 검은 어둠은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 노동자의 동료애, 그리고 어둠을 오랜 시간 관통한 희망의 삶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의 큐레이터 노트 (전남일보, 2026.3.9)에서 옮김

    황재형.황지330.1981.캔버스에유채.176x130cm.jpg
    황재형 <황지 330>, 1981, 캔버스에 유채, 176x130cm

     

    황재형.쥘흙과뉠땅.가나.2010-2.jpg
    황재형 '쥘흙과 뉠땅' 전시 중 (가나갤러리, 2010)

     

    황재형.고한.2011.162x112cm.캔버스에유화.상록.131115-1.jpg
    황재형 <고한>, 2011, 캔버스에 유채, 162x112cm

     

    황재형.식사II.1985-2007.194x130cm.캔버스에유화.상록.131115-1.jpg
    황재형 <식사 II>, 1985~2007, 캔버스에 유채, 194x130cm

     

    황재형.노을은붉다.1990.합판,처랑,램프,아크릴.63x76cm.슬라이드자료-1.JPG
    황재형 <노을은 붉다>, 1990, 합판, 처랑, 램프, 아크릴, 63x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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