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달구는 불의 서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09-18 13:22 조회8,689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 스털링 루비의 <스토브>, 제레미 델러의 <무제(문어)>가 있는 비엔날레전시관 풍경 광주비엔날레를 달구는 불의 서사 저항과 파괴, 소생의 불기운세상을 변화시키는 불의 풍경존재와 삶에 대한 성찰의 장 창설 스무 해에 맞는 제10회 광주비엔날레(2014.9.5~11.9)가 개막한지 보름여가 되고 있다. 그 20년, 10회라는 편년 의미와 기대에 답하듯 ‘터전을 불태우라 Burning Down the House’며 다소 과격한 자기전복의 도전적 주제를 내건 이번 비엔날레에 다양한 초기 반응들을 내놓고 있다. 프레 오픈 때 먼저 전시를 맛본 국내외 전문가와 언론들의 평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들이 많은 것 같다. 주된 의견은 주제에 관한 전시구성과 흐름의 연출, 전시 작품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밀도에서 좋은 평가를 보이고 있고, 반면에 주제를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하거나 불태울 대상과 목적이 선명치 않은 작품들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기도 한다. 제시카 모건 총감독은 “‘터전을 불태우라’는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불태움과 변형, 말소와 혁신의 순환을 탐구한다. 자신이 사는 터전을 불태우는 행위, 그런 파괴 또는 자기파괴에 이어 새로운 약속과 변화의 희망이 뒤따르는 과정은 미학과 역사는 물론… 미술이 직접적ㆍ구체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일이 얼마나 가능하거나 불가능한지도 인식한다”며 “예로부터 불의 에너지와 물질성, 불꽃이 물질을 파괴하고 극적인 개입의 흔적 또는 환희의 잔재로 변형하는 모습은 예술에 깊은 영감을 주곤 했다. 2014광주비엔날레는 이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불의 힘을 중심주제로 삼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비엔날레는 불의 에너지나 움직임과도 같은 실천적 역동성을 추구하면서 지금까지 굳어져 온 공고한 제도나 관념, 자기토대나 틀을 해체하고 벗어나려는 저항의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더불어 지난 세월 묻혀 있던 역사와 삶의 실체를 되짚거나, 이를 통해 현재와 내일을 가늠하려는 작업들에서 세상의 뜨거운 열기 혹은 서늘한 냉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이런 혼돈과 성찰, 정화ㆍ치유의 메시지들이 색다른 방식의 시각이미지나 연극과 무용 요소가 결합된 퍼포먼스 등으로 담겨있다. 터전을 불태우라는 외침은 비엔날레관 앞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시관 벽을 깨부수며 뛰쳐나오는 거대한 문어그림(영국작가 제레미 델러)이 시선을 압도하는데, 그 내부는 이미 시뻘건 화염에 휩싸여 있다. 고착된 제도나 틀로부터 탈출이자, 정치ㆍ경제ㆍ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문어발식 탐욕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다. 광장에 놓인 독일 스털링 루비의 거대한 주물난로는 역사의 응어리만큼이나 두껍고 묵직한 몸체로 자연파괴와 소비ㆍ폐기ㆍ소멸의 장엄한 묵시록을 연출한다. 이런 이미지는 전시관 안에서도 계속된다. 입구부터 전체 전시공간과 통로까지 온통 연기로 자욱하다. 엘 울티모 그리토가 각각의 전시공간을 따라 디자인한 연기 이미지들이 다양한 픽셀형태와 칼라로 모든 벽들을 채우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두운 방 한쪽에는 젝 골드스타인의 <불타는 창문>에 붉은 불길이 어른거리고, 급속히 산업화된 베이징의 거리 곳곳에 불씨를 이어붙이고 다니는 류촹의 비디오영상, 무성한 숲에 불길이 번져 사라지고 나면 장막에 가려져 있던 새로운 대지와 푸른 생명들이 속살처럼 드러나는 박세희의 비디오영상 <상실의 풍경>이 조용히 소멸과 소생을 되풀이한다. ▲ 류촹 <무제>, 2011, 싱글채널 비디오영상 ▲ 박세희 <상실의 풍경>, 2013. 싱글채널 비디오영상 불길이 지나간 뒤의 풍경들도 비감하거나 끔찍하고 때로는 허허롭다. 카미유 앙로는 일상의 중고소품들에 진흙과 타르를 발라 시커멓게 타고남은 잿더미의 잔해처럼 산업사회 허상을 펼쳐놓았고, 코넬리아 파커는 산불현장에서 주어온 숯덩이 파편들을 엮어 매달아 <어둠의 심장>을 연출하였으며, 후마 물지는 심하게 그을린 채 사체로 발견되곤 하는 정치적 실종자를 <분실물취급소>로, 에두아르도 바수알도는 타고남은 건물의 잔해로 만든 네모지고 어두운 방안에 뿌리를 드러낸 채 유령처럼 허공에 매달린 죽은 분재들로 <섬>이라는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 코넬리아 파커 <어둠의 심장>, 2004, 캘리포니아 산불 잔해 ▲ 후마 물지 <분실물 취급소>, 2012, 섬유유리와 버팔로 가죽, 방적사 또한 오토 피에네는 캔버스 위 유화물감에 불을 붙여 움직이면서 그 타고남은 얼룩들로 <Geo>를, 이브 클라인은 그을음을 이용해 신체 일부를 연상케 하는 모노크롬 회화 ‘불의 연작’ <에베라에르 부인에게 보내는 안부와 기원>을, 안와르 셈자는 얇은 나무판자에 불로 그을리며 비정형 화면을 구성해낸 <추상적 글쓰기>를 보여주는 등 불의 흔적에 의한 많은 이미지와 얘기꺼리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우리 삶에서 불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자, 걷잡을 수 없는 확산력을 가진 열기이고, 엄연한 존재들을 일시에 사라지게 해 텅 빈 공허만을 남기는 소진과 파괴의 에너지이며, 나아가 그 소멸을 통해 새로운 속살이 돋아나는 새 터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번 제10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불의 기운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들 또한 세상과 삶에 대한 저항과 분노, 창조적 열정, 상실과 비감, 허무로부터의 자기성찰, 혁신과 재정립의 의지들을 여러 유형으로 담아내고 있다. - 조인호의 미술이야기 (전남일보. 2014. 9.17, 이미지 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