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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넓은 시선으로 ; 인춘교의 사진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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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0-06-01 10:56 조회1,0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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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섬_소록도_옛 성실중고등성경학교, Digital Pigment Print.2008.jpg
    인춘교 <섬_소록도>(옛 성실중고등성경학교). 2008, Digital Pigment Print

     

    깊고 넓은 시선으로 ; 인춘교의 사진 세계

     

    십수 년 전 삼심대 초반의 나는 그 나이대의 젊음이 그러하듯,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다분히 가치 지향적이고, 일적인 영역에선 유독 내용과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삶을 위한 미술을 표방하며 미술 또한 하나의 메시지이기를, 더불어 그것이 사회 안에서 개개인의 삶 안에서 명확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또한 다른 얼굴의 좁은 사고임을 깨달았지만, 그 시간의 나는 훗날 나다움을 고민하게 하는 지점이 되었기에 여전히 스스로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당시 전시기획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접한 인춘교의 시리즈는 내 삶의 태도와 평행선을 이루었기에 눈에 들어온 작업이다. 그 즈음 대학을 갓 졸업한 인춘교는 <젊은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신진작가 발굴 목적의 전시에 소록도 사진을 선보였다. “우리와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편견이 소록도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 안에서 함께 한다. , 고립되고 혼자이며 외로움의 상징인 과 그들.”

    다루기 힘든 시간

    역사의 언저리를 들추고 싶었던 20대의 신진작가는 어느새 마흔의 나이를 눈앞에 두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한 인춘교는 2008년 졸업 시즌부터 6년여간 <_소록도> 연작을 다뤘다. 소록도 안의 사람들과 건축물을 담은 본 시리즈에는 한센병 환우와 그들의 일상이 어두운 색조 안에 자리한다. 인춘교는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로서 소록도를 방문했고, 이후 매년 방학 때마다 그 섬을 찾았다. 전남 담양이 고향인 작가는 어렸을 적 한센병 부부와 한 동네에서 산 기억을 품고 있다. 병과 그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 대한 편견은 없었지만, 소록도 안의 사람과 그 섬이 담보하는 시간의 흔적을 카메라로 포착하는 과정은 피사체의 역사적 무게만큼이나 고된 작업이었다. 네 달 만에 촬영허가를 맡고 막상 카메라를 들었을 때 밀려왔던 중압감을 작가는 또렷이 기억한다. “마음이 불편했어요. 환우들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책임감과 부담감에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도저히 못 찍을 것 같아 지도교수님에게 울면서 전화했는데, 그게 네가 해야 할 역할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섬엔 예배당과 학교, 집과 매점, 논과 밭이 있고 화장터와 관을 짜는 곳이 있다. 작가의 회고대로 소록도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확실하게 보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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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춘교 <섬_소록도> 연작, 2008, Digital Pigment Print

    고립된 섬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주로 밤 풍경으로 표현한 건물은 빛의 궤적을 이용한 라이트페인팅으로 극적인 효과를 주었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명암차이로 인해 건물의 서사와 상징성은 더욱 부각된다. 서정적 이미지까지 엿보이는 건물사진에 비해 인상사진은 보다 직접적이다. 실제로 존재한 이야기를 안고 있는 인물은 그 어떤 상징물보다 보는 이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환우들의 모습을 작업적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그 자체가 기회이자 사명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소화해야 할 피사체였다. 러나 작가 스스로 그들의 삶을 외려 깊이 있게 통찰하지 못했음을 피력한다. “굳이 사람이 아니었어도 될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촬영을 마치고 사진을 고르다보니 약봉지 하나 촬영한 게 없는 거예요. 막상 그분들의 삶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업이 없더라고요.” 사실에 기반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록과 해석의 쟁점에서 대상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가 항상 난제이다. 또한, 역사적 아픔과 사회적 편견이라는 감당하기 버거운 실재는 그것이 그저 소재로써 전락할 수 있는 위험 또한 내포한다. 삶의 경험치가 쌓이지 않는 상태에서 시선의 힘을 빼지 못했음을 자각한 인춘교는 소록도 시리즈 이후로 무거운 작업을 내려놓게 된다. 실제로 당시의 촬영분 중에서 현재까지 공개된 작품은 절반에 그친다.   

     

    잊히고 사라지는 주변

    인춘교는 남성적 어조가 돋보인 소록도 연작 이후 서정적이고 시적인 감성의 작품들을 보여준다. 자기의 눈이자 어느 누구의 시선일 수도 있는 이 시기의 무난한 프레임은 종전보다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다가온다. 2009년부터 8년 동안 진행한 시리즈 <지난날 처음 마주친 그때처럼>은 전라도 지역에 드문드문 남은 폐교들을 찍은 작품이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 독서하는 소녀와 생각하는 사람 · 이승복과 사자 동상까지 우리 유년시절 한켠의 익숙한 도상들은 생명력을 잃은 학교 건물과 한 덩어리의 풍경으로 읽힌다. 감상자는 옛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이 묵은 풍경에서 과거와 현재의 나를 반추한다. 소멸되어 가는 공간이지만 소멸되지 않는 기억은 나르시스적 자기 연민처럼 애처롭다. 다큐멘터리의 건조한 재질 속에 숨은 이러한 감성적 어법은 인춘교 사진의 장점이기도 하다. 비슷한 관점으로 그려낸 구도심의 재개발 풍경에는 도시 난개발의 직접적 고발보다 변해가는 삶터에 대한 애정과 상실감이 진하게 배어있다. <다시, >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예민한 감성으로 포착된 구도심의 풍경을 두고 작가는 도리어 습관처럼 찍어온 것들이라 표현한다. 변화라는 이름 아래 잊히고 사라지는 풍경, 혹은 중심보다 주변의 이야기에 꾸준히 천착해온 인춘교는 어찌 보면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일상 안에서 숨 쉬듯 사진을 찍는 사람을 지향하는지 모르겠다. 전시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카메라를 들어온 속내가 읽혀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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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춘교 <다시, 봄> 연작 중_학동, 양림동, 2008. Digital Pigment Print

    인춘교는 최근 장소성에 몰입해 있다. 일종의 오래된 것들에 대한 모음을 계획 중이라는 그는 충장로의 광주극장과 명성예식장을 비롯한 오랜 시간을 유영해온 공간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단순히 물리적 성격의 장소가 아닌 우리 삶의 긴 호흡 안에 자리한 그곳의 가치를 특유의 따스한 시선으로 품어낼 생각이다.

    내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그는 실재성이라는 사진의 장르적 특질이 오히려 거짓을 담을 수 있는 위험 또한 안고 있음을 인식한다. 결국에 작가는 나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는 소통 혹은 공감의 지점을 새삼 돌아보는 과정 중에 있다.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영역에서 깊은 시선이란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 즉 스스로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삶으로부터 투영된 예술은 보다 많은 향수자로 하여금 공감 영역을 확장시키기도 하지만, 넓은 시선으로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기도 한다. 수 년 후 작가가 다시 찾을 소록도는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인 피사체일 터이다. ‘깊고 넓은시선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풍경들을 그려낼 수 있기를 바란다.

    - 고영재 (전 광주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전라도닷컴] 2020.6월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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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춘교 <광주극장>, 2019, Digital Pigment Prin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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