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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폭에 풀어낸 내면치유와 삶의 질감-강운 회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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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백종옥 작성일20-09-21 10:51 조회1,0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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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운 회화전.마음산책.김냇과갤러리.200918-10.jpg


    화폭에 풀어낸 내면치유와 삶의 질감-강운 회화전

    2019.09.18-10.31 / 문화공원 김냇과갤러리

     

    구도적 회화의 길, 관조에서 치유로

    (생략) 지난 2019년부터 강 운 작가는 이전의 작업과 매우 다른 스타일의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변화의 계기는 20191월에 찾아왔다. 어떤 기획전에 초대받은 그는 전시 주제와 관련이 있는 비무장지대(DMZ)를 답사했는데, 그곳에서 날카로운 철조망을 줍다가 손에 작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런데 광주로 돌아오는 길에 손의 상처가 아려 오면서 묘하게도 그의 내면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상처의 감정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면의 상처를 직시하고 이를 치유하는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9년에 선보인 <바람소리 그리고 흔적>연작은 치유의 작업으로서 첫 시도였다. 이 작업에서는 상처를 상징하는 철조망이 주요 이미지로 등장하는데, 마치 오래된 상처들을 드러내고 치유하려는 행위처럼 캔버스에 강하고 진한 색들을 칠하고 지우고 긁어내고 덮기를 반복하는 작업 방식을 취했다.

    이렇게 시작된 치유의 작업은 2020년 들어 보다 깊이 있는 면모를 보여준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마음 산책>연작이 그것이다.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 성찰적이고 고백적인 성격이 강한 이 연작에는 우울증과50대의 단상, 사랑과 이별 같은 개인적인 문제부터 관심 있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대담, 5.18 당시 학교 선생님의 아내 사망 사건 등 작가의 관심사나 기억과 관련된 내용들이 두루 담겨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화면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고 추상화되어 있다. 처음 이 연작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딸과의 대화였다. 어느 날 부녀는 아내이자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각자 겪은 우울증에 대해 토로하며 대화를 녹음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강 운 작가가 녹음된 내용을 들으며 컴퓨터로 타이핑을 하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타이핑한 글들을 캔버스 작업으로 옮겨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였고, 실제로 캔버스 작업을 하면서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캔버스 작업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잘 알려진 기존의 그림들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작업이 전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화나 독백을 타이핑한 글들을 캔버스에 옮길 때는 우선 바탕 작업부터 시작한다. 글의 내용을 상징할 만한 색깔을 선택하고 작업 당시의 감정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게 혹은 부드럽거나 거칠게 붓질을 하며 바탕을 칠한다. 그리고 덜 마른 표면을 생채기를 내듯 긁어내며 수많은 글자들을 필사한다. 이 필사의 과정에선 묵언 수행 같은 노동의 고통과 상처에 대한 성찰이 교차된다. 이를 통해 다소 정화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런 감정과 글에 어울리는 색깔을 이용하여 그 글의 내용을 치유하듯이 덮어버리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비슷한 내용이지만 보다 정리된 글을 쓰고 또다시 색으로 지우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림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로 이런 과정들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상처 같은 글자들은 점점 희미해지는 대신 물감층이 겹쳐 쌓이게 되어 마침내 색채는 보다 명료해지고 표면은 우둘투둘한 마티에르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밑바탕부터 겹쳐진 층들이 어렴풋이 보이게 되는데, 강 운 작가는 이렇게 겹치는 작업 방식을 속이 비치는 옷감처럼 보인다는 의미에서 '시스루(see-through) 기법'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본질은 마음 속에 응어리진 감정과 기억들을 대화나 독백으로 끌어낸 뒤 글과 그림이라는 외부의 현실로 물질화함으로써 작가의 내면을 비우고 치유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전시장에서 바라보는 그의 작품들은 자기 치유 행위가 남긴 추상적이면서 물질적인 흔적인 것이다. 이렇게 추상적이고 마티에르가 강한 회화적 특성 때문에 <마음 산책>은 앵포르멜 회화를 상기시킨다. 특히 2차 대전에서 겪은 고통이 고스란히 물질화된 듯한 장 포트리에(Jean Fautrier)의 회화가 떠오른다. 물론 <마음 산책>에서 색감이 중시되는 것은 앵포르멜 회화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그의 작업 인생 전체로 보아 <마음 산책>이 중요한 점은 작가의 관심이 이제 관조적인 작업보다는 치유의 작업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에서 인간의 이야기로, 철학적인 응시에서 일상적인 날것의 대화로 전환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치유의 관점에서 돌이켜보면, 기존의 작업들도 치유의 작업으로 수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도하는 자세로 작업했던 <공기와 꿈>2012년부터 암으로 투병하는 아내를 보살피면서 생긴 답답한 심사를 조금이나마 내려놓고자 집중했던 작업이기도 했다. 그리고 놀이의 성격이 강한 <물 위를 긋다> 역시 작가에겐 추모와 치유의 행위로서 의미가 있었다. 20157월 아내와 사별한 뒤 그는 삼년상을 치르듯이 1095일간 매일 일획을 그으며 아내를 추념하고 자신의 외로운 마음을 다독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그는 이미 아내와의 사별 전후 시기에 작업의 의미를 자신을 위한 치유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내의 부재가 치유의 작업을 잉태시킨 셈이다.

    (중략)

    지난 30년간 그의 작품 세계는 최소한 네 번의 큰 변화를 겪었다. 그가 하나의 화풍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히 변화를 추구해온 이유는 끊임없이 '예술이란 무엇이며, 회화란 무엇인가?'를 자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예술의 근본적인 화두를 짊어진 구도자(求道者)의 자세이다. 그래서 예술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그가 이제까지 해온 여러 작업에는 양상은 다르지만 작가 정신을 예리하게 가다듬는 수행의 성격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명상적인 유화 구름, 점수(漸修) 같은 한지 구름, 돈오(頓悟) 같은 일획 작업뿐만 아니라 성찰적인 치유의 작업이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강 운의 예술 세계를 한마디로 '구도적 회화'라 칭하고 싶다. 그에게 구도적 회화란 관조와 치유를 품은 (그의 말대로) '삶의 진실이 용해된 회화'일 것이다. 그가 가고 있는 구도적 회화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그가 매진하고 있는 치유의 작업이 한지 구름과 일획 작업처럼 그의 작품 세계를 구성할 또 하나의 중요한 기둥이 될 것인지, 아니면 과도기의 작업으로 머무르게 될 것인지 지켜봐야 할 시간이다.

    -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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