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안팎 보듬은 꽃담’ 서병옥 회화세계 > 전시비평/리뷰

본문 바로가기

전시비평/리뷰

Home > 남도미술소식 > 전시비평/리뷰
    전시비평/리뷰

    ‘천지 안팎 보듬은 꽃담’ 서병옥 회화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0-11-26 19:51 조회894회 댓글0건

    본문

    서병옥.꽃담VII.59.5x84.3cm.개인전-국윤.20201125-1.jpg
    서병옥 <꽃담 VII>, 캔버스에 혼합재, 59.5x84.3cm

     

    천지 안팎 보듬은 꽃담서병옥 회화세계

    국윤미술관 기획초대전 / 2020.11.06.-11.26

     

    담은 울타리고 경계 지음이며 장벽이다. 공간 안 주인의 일상활동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욕구와 호기심을 가두는 통제구역 표식이기도 하다. 들판의 들꽃이나 이름 없는 잡초들처럼 저 알아서 피고 지는 여염집 무지렁이들의 열려진 삶이야 보호도 통제도 무슨 필요가 있으랴마는 지체 높으신 구중궁궐이나 저택의 주인들에게는 안팎의 경계를 확실히 하고 제도와 규범의 틀을 높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서병옥의 꽃담은 담장에 조형된 우리 고유 미감의 표현이자 틀 지워진 삶에서 꿈꾸는 천지 간 심상세계의 상징적 도상들이다. 어느덧 15년 이상을 계속해 온 그의 꽃담작업은 초기의 옛 와당들에서 발견한 다양한 조형미와 회화적 질감의 매료에서 점차 상징적 의미를 담은 도상들의 정신세계로 실체와 비물질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었다. 과도한 변화나 내세움 없이 긴 세월 묵묵히 한 소재에 깊이 천착해 온 그의 작업태도는 오로지 한 자리에서 제한적일 수도, 무한한 것일 수도 있는 담장의 존재의미와 많이도 닮아 보인다. 19832인전 이래 늦게야 갖게 된 1995년 첫 개인전 때 장승, 역사유물, 꽃담 등을 주된 소재로 다룬 이후 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에게는 뿌리 있고 고유한 것, 전통의 맥과 고풍스런 것에 대한 선호취향이 특별하다는 것도 읽혀진다.

    한때 그의 작업에서는 향수 어린 시골길이나 삶의 현장으로서 들녘과 염전, 마른 풀더미에 쓰러진 석조유물들, 봄빛 화려한 매화꽃과 목련과 산수유 꽃무리, 나무그늘 드리워진 꽃담 등등이 다뤄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근래 그의 화폭은 단순간결한 소재들에 의한 절제된 조형미가 돋보인다. 꽃담의 한 부분을 화폭에 가득 채워내면서 실체감을 높이기 위해 백경석 가루를 섞어 만든 바닥재를 바르고 그 위에 담장을 조영해 올리듯 붓끝으로 안료를 수없이 찍어가며 담벽의 까실까실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연꽃, 불로초, , 목어 같은 모양으로 기와와 와당(瓦當), 망와(望瓦)들이 꽃담장식을 이루면서 천지간의 속이야기와 벽사기복 염원들이 내밀하게 구성된다. 삶의 경계이자 영역이기도 한 담장은 그 담의 안과 밖, 물질계와 정신계, 현실과 피안의 세계를 보듬어 안은 소우주로서 그는 이를 우리 민족 고유의 한울의 의미라고 여긴다.

    이번 발표작들은 제목부터가 <꽃담과 망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도 있지만 <기원> <염원> <낮과 밤> <삼라만상> 등등 대부분 심상세계를 함축하는 것들이다. 크고 작은 화폭에 담긴 기와 와당들의 조형 자체가 삼라만상의 표현이면서도 연꽃무늬 와당모양으로 해탈을, 인물상 망와 뒤로 배치된 사후세계 통로인 피라밋 위에 만월부터 초승달에 이르는 달모양들로 무한 시공간을, 불로초 망와 위에 북두칠성과 해와 달을 배치해서 만세무병장수의 기원을, 적요의 공간에 흐르는 소리의 파동과 인물상 망와와 해와 달이 단을 이루면서 주야로 열린 천지우주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기와 와당들의 곡선과 직선의 유연하면서도 견고한 조화, 기와무늬들로 꾸며지는 화면구성의 비례감, 거친 듯 엷은 갈색조의 절제미 등등이 함축된 조형미와 상징성을 더해준다.

    꽃담이 지닌 우아함과 조화로움, 소박하거나 화려하기도 한 장식미, 담장의 폐쇄감을 상쇄시키는 무한 시공간의 상징성, 무시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올곧게 제자리를 지켜주는 의지체로서 담장의 존재감 등등은 꽃담 자체가 지닌 특별한 매력이자 귀한 문화자산이다. 이 같은 전통자산을 파격과 신선한 시도가 쉼 없이 거듭되는 현대미술 현장에 소환해내어 회화적 조형미와 상징성을 배가시키는 서병옥의 연작은 그만큼 특별해 보이기도 한다. 요동치는 세상흐름에 휩쓸려 호흡을 가쁘게 가져갈 필요는 없겠지만 오랜 시간 이어온 진득한 탐닉이 혹여 진부하거나 답보적인 천착이 되지 않도록 당대의 시대감각도 끌어들이면서 창작의 생기가 매력을 더하는 조형세계로 가꾸어갔으면 하는 기대감을 전한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서병옥.꽃담I.52.5x135cm.개인전-국윤.20201125-1.jpg
    서병옥 <꽃담 I>, 캔버스에 혼합재, 52.5x135cm
    서병옥.jpg
    서병옥 <염원>, 캔버스에 혼합재, 45x61cm / <일월성신>, 캔버스에 혼합재, 73x135cm

    서병옥개인전.국윤.20201125-5.jpg

    서병옥개인전.국윤.20201125-6.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Copyright 2024 광주미술문화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의 이미지들은 게시자와 협의없이 임의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