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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원의 조형세계 ; 감각의 전이, 채집된 흔적이 이끄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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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21-11-06 11:30 조회2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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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race-폐허의 미학, 2019.jpg
    유지원 <Trace-폐허의 미학>, 2019

     

    유지원의 조형세계 ;감각의 전이, 채집된 흔적이 이끄는 대로

     

    이 글은 2021년도 [대인예술곳간 묘수-3기 작가 현장 크리틱] 1025일 뽕뽕브릿지에서 진행된 유지원 작가에 대한 고영재 큐레이터의 비평 요지로 작가 이해를 넓히기 위해 공유한다.(편집자 주)

     

    우리는 종종 버려진 폐가와 구도심의 재개발 현장과 같은 삶의 흔적들에서 모종의 자발적인 동요를 느낀다. 단순히 사적인 기억에 의거한 감정적 일렁임이 아닌 내재된 감각들이 올라오는 의도치 않은 경험으로 인해서, 타자의 낯선 공간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간으로 체화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켜켜이 축적돼온 시간의 흔적과 그것의 소멸이 유발하는 것은, 주관의 객관화와 같은 의외의 명징한 사고적 흐름일 수 있다. 사회 안에서 소외된 장소와 함께 쓸모를 다한 폐기물들의 수집을 바탕으로 입체와 영상 작업을 선보여온 유지원은 이 보잘 것 없는 물질, 혹은 장소들의 본래적 속성을 작업의 형식으로 치환한다. 작가의 서술대로 가치의 재구성이라는 테마는 사회와 역사적 메시지 따위의 의도된 결론이 아닌, 생성과 소멸의 과정 안에서 파편화된 흔적들이 담보하는 개인 내지는 집단의 사유에 관한 것들이다.

    조각을 전공한 그가 애초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변화하는 세태 안에서 변화된 공간과 장소들이었다. 비판의 의도가 아닌 오롯이 건축적 구조나 완성도에 흥미를 가졌던 그는 유학시절에 작품의 개념 부재를 느끼며 의식의 확장을 도모한다. 장소적 특질과 우연의 해프닝으로 어우러진 영상 작품 <예술가의 여정>이 그것으로, 유지원은 본 작업을 통해 과정 자체가 작품 자체의 함의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영상 속 인물들은 프랑스의 부촌과 빈민가를 아우르는 폐선 부지를 바퀴 달린 수레와 유사한 기이한 이동 수단을 이용해 훑어간다. 철로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나 자연물들을 집적해나가며 집과 같은 하나의 공간이 재구성되지만, 이는 경계가 없는 미완의 공간으로 추상적 공간에 가깝다.

    작가는 이 시기를 계기로 버려진 물건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삶을 흔적들을 표현의 영역으로 적극 끌어들인다. 연인의 것으로 보이는 버려진 교환일기는 더욱 빠르게 변화할 시대 안에서 교감하지 못할 낯선 유물로 대변되기도 하고, 철로 근처의 헐린 집터는 타자의 흔적에서 자기화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모태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설치 작품 <Trace - 폐허의 미학>은 파리의 도심에 버려진 골판지를 주요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일상을 구성했던 개별적 존재들을 구조적인 어법으로 재구성, 기성 오브제의 본래적 구체성은 추상적인 사물이나 개념으로 전복된다. 건축적 파편인 타일은 더 이상 경계의 역할을 상실한 채 완전한 전체에서 탈피하는가 하면, 물건을 포장했던 골판지들은 외려 통일된 미감의 경계로 구조화되어 원시적인 질감을 드러낸다. 전시장이라는 화이트 큐브의 규격화된 장소는 이러한 기성의 파편들이 제 기능을 상실함으로써, 도리어 의식의 열린 공간으로 변모한다. 더불어, 한톤 다운된 색색의 파스텔 색조로 분한 골판지는, 일종의 환기 장치로 관람자로 하여금 내재된 감각을 이끈다. 흔적 시리즈를 비롯한 <Trace - Un(Building)>과 같은 이 즈음의 비슷한 유형의 작품들을 볼 때, 작가는 가치의 전복과 재구성에서 감상자들의 의도하지 않은 감각들이 올라오고, 결국에는 풀어헤쳐진 이 낯선 장소에 체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유지원의 근작들은 종전의 성향보다 더욱 집요한 관찰이 돋보인다. 유년시절을 포함한 과거에 경험했던 공간들이 이미 소멸되고 사라진 것을 목도하면서, 장소성이 이끄는 누군가의 시간과 기억들을 작업적 범주로 에두른다. 건물을 짓거나 허무는 장소를 관찰하면서 체득한 건축적·실용적 이미지들을 작품의 형식으로 차용하거나, 폐지와 폐품 등의 버려진 것들과 현대의 건축물들이 함축하는 사회 문화적 관계에 천착하며, 어느 정도는 비판적 시선에서 이야기를 끌어가기도 한다.

    유지원의 작업은 관찰의 과정에서 길어 올린 사유의 단편들을 집적하는 과정이니만큼 일관되게 거친 느낌을 자아낸다. 그의 작업적 힘은 자유롭게 던져지거나 재구성된 구조가 관람자로 하여금 각기 다채로운 감각과 사고를 가능케 하는 지점에서 발휘된다. 가장 최근의 경향은 이전보다 정제되고 가공된 느낌으로, 기존 작업의 결과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다양한 형식적 실험의 단행은 고무적이지만, 생각의 폭이 확장되었다가 외려 형식적 틀 안에 갇혀버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덜어낸 형식에서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려 함은 긍정적이나, 작품을 접하는 이들의 감각과 사유를 일깨우는 작업 자체로서의 자율적 힘은 유지원 작업의 큰 장점이자 지속성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작가는 관람객이 작품 앞에 오랜 시간을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자신만의 손맛이 느껴지는 작품 안에서 스스로가 채 인지하지 못한 다양한 생의 기운들이 살아나기를 또한 바란다. 열린 공간의 열린 해석으로 다양한 감각들이 작품 안에서 전이될 수 있다면 좋겠다.

    - 고영재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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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원 <시가 없는 세상>, 2017~2020 / <노동의 가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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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원 <Trace-A,B>,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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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원 <예술가의 여정>, 2015, Video, 14m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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