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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과 색에 대한 감흥회화 ‘색채의 마술사 임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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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2-04-26 11:41 조회1,4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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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직순 <꽃과 여인>, 1981, 캔버스에 유채, 53x65.1cm

     

    빛과 색에 대한 감흥회화 색채의 마술사 임직순

    2022.04.19-06.26 / 광주시립미술관

     

    호남 서양화단이 주관적 감흥 위주의 자연주의 구상회화로 지역화풍을 이루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임직순(1921~1996)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부당한 모함과 압력으로 교단을 떠나게 된 오지호 화백의 뒤를 이어 1961년부터 명예교수로 마무리하기까지 20여 년 동안 조선대학교 서양화 교육을 주도하며 호남화단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다.

    그는 일본미술학교 출신으로 이미 1956년과 57년에 [국전]에서 문공부장관상과 대통령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던 유망작가였다. 숙명여고 미술교사이던 그가 조선대로 내려오면서 오지호의 생명교감과 태양의 광휘에 따른 생동하는 색채나 표현성 강한 필치의 회화와도 일맥상통하여 자연스레 지역감성에 녹아들 수 있었다. 그에게서 화업의 기초를 다진 수많은 화가, 미술교사들이 그의 화풍과 회화관을 따르며 호남 인상주의화풍을 지역 전형양식으로 굳혀 놓았다. 뿐만 아니라 전라남북도는 물론 타 지역 미술교사들로 나가거나,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오지호-임직순이 정립한 호남회화양식을 전국화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호남 서양화단에서는 오지호와 더불어 거목으로 자리하고 있는 임직순의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광주시립미술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은 올해의 기념전으로 기획한 것이다. 시립미술관 소장품은 물론 다른 미술관이나 개인소장품까지 수작들을 모아 유화 75, 드로잉 60, 아카이브자료 70여점으로 그의 회화세계를 망라하고 있다.

    전시는 색채의 마술사라는 제목으로 시기별 주요 작품들을 3개 섹션으로 구성하였다. 첫 번째로 만나는 색채 속에서 피어나고 색채 속으로 스민다는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모색하는 주로 1950~60년대 작품들이다. “자연에서 얻은 감동이 그대로 화폭에 재현되는 것을 근본으로 생각했던 시기일 것이다. 따라서 아직은 색채가 적극적으로 강조되기 이전의 사실재현 위주이면서 대체로 갈색조가 많아 어두우면서 엷고 밀착된 터치들로 대상의 묘사에 충실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여인 좌상>(1956)은 화구가 놓인 테이블 앞에 방문객 같은 포즈로 비스듬히 앉은 여인을 주관적 해석 없이 충실하게 묘사한 것이다. 인물과 주변부 소품들까지 거의 비슷한 톤으로 꼼꼼히 묘사한 붓자국들은 이후 그의 전형을 이루는 대범한 붓질의 색채회화들과는 큰 대조를 보인다.

    일제 강점기 일본 유학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이 같은 아카데믹한 화법은 <해바라기와 소녀>(1959)에서 일부 변화의 조짐들을 보인다. 여전히 갈색조가 깔려있지만 학생의 옷이나 의자에 걸쳐진 꽃무늬 천, 테이블 위 화병 처리에서 굵은 필선과 형태의 단순화, 원색의 가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1967년 작인 <무량수각>은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청갈색조 그늘 속 건물과 한 귀퉁이 볕이 드는 축대부분의 자잘한 터치들을 황갈색조로 통합한 색면끼리의 대비가 돋보인다.

    두 번째 섹션 찬란한 색채의 집합에서는 일본이나 프랑스 등 해외전시가 이어지는 시기인 1970년대에서 80년대 초 무렵으로 주관화된 화면처리에 더 적극성을 보이는 작품들이다. “창작기법보다는 개성을 우위에 두는세계미술 조류를 느꼈고, “타성에서 일탈, 인간 본연의 자세에서 엄숙하게 자신의 세계를 확산해 가야겠다.”(전남일보, 1975.1.5)는 각심이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유럽 체류 당시 현지 모델을 그린 <사념>(1973)은 깊은 생각에 잠긴 여인을 훨씬 대범해진 붓질들로 사실성보다는 청회색 주조의 사색적 분위기 묘사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러한 대상의 주관적 해석과 독자적 회화세계에 대한 관심은 <가을과 여인>(1974), <서재에서>(1976), <포즈>(1978), <독서하는 여인>(1979) 등에서 점차 더 뚜렷해진다. 인물의 상·하의나, 배경이나 주변부 처리를 큰 덩어리의 색면공간들로 보고 원색의 대비, 세부묘사를 생략한 굵은 필치, 구애받지 않는 윤곽선들에서 색채의 화음과 생동감들이 더해진다.

    이같은 변화는 풍경화에서도 <여수 신항>(1971), <강이 있는 풍경>(1972), <이른 아침>(1974), <구름과 산>(1977), <무등산>(1978) 등에서 인물화와 마찬가지 주관화된 풍경해석이 더해진다. 화면의 색채효과를 위한 원색과 중간색조의 조율, 굵고 활달한 필촉 등에서 감흥이 차오른 한 덩이의 화면효과를 우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섹션 시각적 진실 넘어 내면적 화음에서는 80년대 이후 묘사대상과의 상대적 관계를 넘어 주관적 내재율로 단순 간결하게 용해시켜낸 화폭들이 이어진다. “시각적 진실에서 심각적인 진실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며, 어느덧 색채의 세계는 환상의 세계로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다.”는 임직순의 화문집 꽃과 태양의 마을(1980)에서 따온 말이다. <여수항의 일우>(1981), <언덕길>(1984), <소나무가 있는 풍경>(1989), <복숭아꽃 필 때>, <구름과 산>(1990) 등을 들 수 있는데, 인물화보다는 풍경이나 꽃 같은 자연소재를 더 즐겨 다루고 있다. 이들 말년의 작품은 바라다 보이는 외부 대상으로서 자연풍경이나 꽃이 아닌 화가의 마음속에 비춰진 화경을 감흥에 차오른 색채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소소한 소재들이나 형태의 단순화, 간결하게 흥을 절제하면서도 녹아 흐르는 듯한 굵은 필치들, 농익은 색면들 간의 구성효과에서 주관화된 구상회화 세계를 펼쳐내었다.

    한 작가의 평생 화업을 펼쳐놓고 보면 주된 시기별 관심사나 회화적 표현에서 변화의 큰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임직순의 경우에도 청년기 학습된 회화묘법을 털어내어 가면서 주된 회화적 관심은 대상과의 감성적 교감, 그 감흥을 바탕으로 한 소재의 주관적 해석, 원색의 대비와 중간색조들과의 조화, 화면의 색면공간으로서 조율에 점점 더 집중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광사>(1969)<여수>(1970) 같은 작품은 독자양식을 찾아가는 모색의 과정부터 대상 풍경의 회화적 재해석과 화폭에서의 색채위주 공간구성 효과에 관심이 컸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빛과 색채의 만남으로 건강한 생과 자연에 대한 헌사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 생명교감으로 차오른 감흥의 낙천적인 화풍과, 대상과 법식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필치, 농익은 원색과 중간색조의 풍요로운 조화, 여인과 꽃으로 집약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의 미감은 임직순 회화가 지닌 독보적 정서적 친화력이다. 그의 평생 화업 중 일부를 모아놓은 것이지만, 오랜 기간 지역미술양식으로 전형을 이루었던 호남 구상회화 대부의 회화세계를 살펴 볼 수 있는 전시이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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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직순 <여인좌상>, 1956, 캔버스에 유채, 116.7x91.2cm, 리움미술관 소장 / <사념>,1973. 캔버스에 유채, 65.1cm, 개인 소장
    임직순-2.jpg
    임직순 <포즈>, 1978, 캔버스에 유채, 90.7x72.3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 <좌상>, 1977, 캔버스에 유채, 72.5x53cm, 개인 소장
    임직순.여수신항의 전망.1971.캔버스에유채.81x100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jpg
    임직순 <여수 신항의 전망>, 1971, 캔버스에 유채, 81x100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임직순.언덕길.1984.캔버스에유채.60.6x72.7cm.개인소장.jpg
    임직순 <언덕길>, 1984, 캔버스에 유채, 60.6x72.7cm, 개인소장
    임직순.복숭아꽃필때.1989.캔버스에유채.60x90.7cm.개인소장.jpg
    임직순 <복숭아꽃 필 때>, 1989, 캔버스에 유채, 60x90.7cm, 개인 소장
    임직순.소나무가 있는풍경.1989.캔버스에유채.130.3x162.2cm.개인소장.jpg
    임직순 <소나무가 있는 풍경>, 1989, 캔버스에 유채, 130.3x162.2cm, 개인 소장
    임직순전.광주시립30주년전.20220422-7.jpg
    '색채의 마술사 임직순' 전시 일부
    임직순전.광주시립30주년전.20220422-1.jpg
    '색채의 마술사 임직순' 전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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