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석 개인전 '검은 울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24-10-21 13:53 조회61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김호석 개인전 '검은 물음' 전시실 부분 김호석 개인전 ‘검은 울음’ 2024.10.16-10.24 / 전남대학교 용지관 컨벤션홀 5‧18민주화운동을 주된 소재로 한 사실주의 수묵화가 김호석의 작품전이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와 법학연구소 동아시아법센터 공동주관으로 교내 용지관 컨벤션홀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와 연계하여 10월 18일 용지관 강당에서 학술심포지엄이 열려 10명의 발제로 김호석의 작품에 대한 집중분석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우리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기도 한 김병헌, 고영재, 김허경, 조인호의 발제문 일부를 간추려 공유한다.-편집자 주 김호석 작가의 그림 <불나방, 진드기> (중략) 3작품 모두 벌레를 그리고 있고, 그것도 이 벌레가 하나같이 인간에게 해로운 벌레다. (중략) 소위 말하는 해충이 왜 그림의 주인공처럼 그러져야만 했을까? (중략)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장 위대하고 지엄하며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근데 과연 인간은 그러한 존재인가? (중략) 김호석의 <불나방, 진드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질문을 쉴 새 없이 떠올리게 만든다.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들, 어려운 사람을 보고서도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 가슴이 아니라 머리만 키우면 된다는 생각이 만든 고도로 지능적인 사기꾼들, 그 벌레보다 못한 인간들이 과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는 불나방 애벌레를, 좀벌레를, 진드기를 혐오스럽다고 죽이고 징그럽다고 욕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최선이 인간에게서는 왜 최악이 되어야만 하는가? - 김병헌 (소촌아트팩토리 센터장) 작품 <하얀 침묵>(열린 침묵)은 (중략) 관의 덮개가 닫히기 전 두상만 겨우 드러낸 작품 속 인물들은 흙빛의 낯을 하고 있다. 팔할이 여백에 먹뿐인 수묵화이지만, 작가는 인물이 들어찬 관의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바림하여 얼굴들을 강조했다. (중략) 먹빛 배경과 한 덩어리로 읽히는 상단의 얼굴은 짙은 먹빛으로 갈무리했다. 사건이 곁들여진 인물이지만 작가는 인물의 구체적 얼굴을 까맣게 칠해 없애 현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다. 진실 규명이 여전히 표류 중인 오월, 그리고 오월을 포함한 역사를 대하는 세태를 비롯, 과거를 바로 보는 시선이 부재한 지금을 칠흑 같은 검은색 낯빛으로 표출했을 터이다. 우리는 먼저 살다 간 이들과 앞으로를 살아갈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더불어, 그 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색이 거세된 낯빛은 틀어막은 하얀 솜덩어리들과 극적으로 유비된다. 진실을 말할 수 없는 허망한 침묵의 상태, 사실을 증거할 수 있으나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라는 모순적인 세태를 작가는 ‘하얀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한 듯하다. 결국에는 사실을 똑바로 보는 태도가 요구됨을 작가는 구체적 상황과 극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 고영재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학예연구사) 김호석의 <대 I>, <대 II>는 첫째, ‘사실성’과 ‘사의성’의 상응을 통해 ‘그린 부분’인 필묵과 ‘그리지 않는 부분’의 여백이 하나의 면을 이룬다. (중략) 여백의 핵심은 화폭의 바탕에 그대로 남겨두는 부분 즉 ‘본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사실성’과 본질에 이르고자 하는 ‘뜻을 그린다’는 ‘사의성’이라는 두 측면이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화면에서 ‘그리지 않는 부분’인 무는 감각 기간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형이상의 영역에, ‘그린 부분’인 유는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포착할 수 있는 형이하의 영역에 놓인다. 두 번째는 ‘그리지 않고 그린’ 또는 ‘형 없는 상’을 표현하기 위해 바림(渲染)을 운용하고 있다. (중략) 김호석에게 여백의 바림은 선묘에 따른 부차적인 붓질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미묘한 기운을 생성한다. <대 I>, <대 II>에 반복되는 여백의 바림은 묵죽의 농담과 붓질의 강약이 직관과 통찰로 귀결되는 초월적인 세계, 음과 양의 기운 등을 내포할 뿐만 아니라 수학적 숭고를 느끼게 한다. 셋째, <대 I>, <대 II>의 미적 특성은 물아합일(物我合一), 무위자연이라는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게 한다. 여기서 물은 사물‧대상을 말하고, 아(我)는 자신‧마음을 말함으로 무아는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드러나는 고요함과 담박(淡泊), 소쇄(瀟灑), 공영쇄락(空靈洒落)을 의미한다. 가령, 김호석의 대나무는 표암 강세황이 서화 세계를 추구하며 텅 비면서 영롱하고, 맑고 시원한 경지를 그림의 이상으로 삼았던 공영쇄락과 같이 먹과 물을 결합함으로써 무아의 세계를 나타낸다. 이를 수묵 정신으로 환원하면 대상과 존재의 본질을 대하는 사의적 태도, 나아가 인간의 높은 정신적 가치를 상징한다. - 김허경 (전남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 김호석의 <광주민주화운동사>(2000)는 그가 우리 현대사의 한 단편을 소환해내고 그로부터 취해야 할 중요한 정신과 작가적 발언을 회화적으로 집약해낸 사실주의 수묵화 작품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구름이나 연기처럼 뭉글거리는 화면공간 구성이다. (중략)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꿈결처럼 어렴풋해지는 기억을 되살려내는 듯,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이 점차 역사 속으로 녹아 스러지는 듯 다뤄져 있다. (중략) 충격과 자극이 강하면 둘러싼 모든 것들이 순간 아득해지거나 증발해 버리듯 우리 역사와 사회현실에서도 어떤 사건과 현상과 이념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들이 있다 그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은 무어라 확정적으로 단언할 수 없는 시대의 표상일지도 모른다. (중략) <광주민주화운동사>에서는 확연히 무게가 쏠리는 중심 인물군이 없다. (중략) 시대의 부름에 자발적으로 응답하든, 의지와 상관없이 무조건적 명령에 따른 투입이든, 모두가 뜨거웠던 한 시대 그 현장의 주인공들로서 똑같은 초상들일 뿐이다. (중략) 어느 개별존재가 집단에 묻히거나, 그 집단 가운데서 특정한 누군가가 영웅으로 떠오르는 것 없이 하나의 상황 속에서 모두가 저마다의 입장으로 현실과 맞닥뜨렸던 현장의 사람들이었듯 화면공간에 대등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전무후무한 역사 현장에 함께 부딪혔던 그 한 개인 개인이 입장과 역할은 각기 달랐지만 다 같은 무도한 야욕의 희생자들일 수 있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대를 만들고 역사를 이루어낸 주인공들이라는 관점이 아닌가 싶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김호석의 <불나방> <진드기>, 2024, 한지에 수묵 김호석 <하얀 침묵 (열린침묵)>, 2024, 한지에 수묵, 141x146cm 김호석 <대 1>, 2023, 한지에 수묵, 144x588cm 김호석 <광주민주화운동사>, 2000, 한지에 수묵, 190x190cm 김호석 개인전 '검은 울음' 전시실 부분 '김호석의 검은 울음' 학술심포지엄에서 작가 토론 중인 김호석 작가와 박구용 전남대 교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