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창 초대전 ‘쌀에 대한 사유’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하림 작성일25-05-23 14:49 조회35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정영창 <쌀의 시간 2>(부분), 2025, 나무문, 창문, 대나무발, 사발, 쌀, 87x92x182cm 정영창 초대전 ‘쌀에 대한 사유’ 2025.05.09-05.31 / 나주정미소 “쌀은 식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생존의 최소 단위이며, 노동과 시간, 자연과 인간의 협업 결정체이다. 한 그릇의 쌀은 곧 한 사람의 삶을, 한 가족의 생계를, 한 시대의 기억을 응축하고 있다.” - 정영창 작가노트 중 쌀, 생명의 메타포어 화가 정영창은 자신의 그림으로 부당한 힘에 의해 억압받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예술가다. 마치 자신이 쓴 철학으로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믿었던 카를 마르크스와 흡사하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꿈꾸던 유토피아나 정영창이 그려왔던 올바른 세상이 이루어지기는커녕 이스라엘은 가자의 병원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폭탄을 퍼붓고 미국은 제국주의의 길로 치닫고, 비록 무산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영구독재를 꿈꾸던 자가 온 나라를 경악케 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때 한물간 경향으로 취급되었던 우리나라가 만들어낸 독창적이고 거의 유일한 사조일지도 모르는 ‘민중미술’의 재조명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함께 우리나라의 군사독재, 일제의 군국주의 등에 억압받았던 민중들의 삶을 투영했던 정영창의 작업 또한 재조명이 요구된다. 특히 지금은 5·18기록관의 어두운 수장고에 갇혀있는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 ‘검은 비’ 또한 다시 밖으로 꺼내와 민중을 억압하려는 세력들에 대한 경종을 울려야 하는 시점으로 보인다. 무수한 쌀을 미디어로 5·18 영령들을 형상화했던 작품인 그의 ‘검은 비’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 또한 쌀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검은 비’와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쌀의 메타포어는 동일한 궤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확연한 차이도 있다. ‘검은 비’에서의 쌀이 주는 상징적 의미가 희생되어 ‘죽어간’ 생명이라면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쌀은 ‘살아있는’ 생명이다. 인간의, 특히 우리 민족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에너지의 근원인 쌀을 그는 생명의 근원으로 은유하고 있다. 무생물인 쌀을 생명으로 치환하는 그의 시도가 자칫 물신론적이거나 유물론적인 발상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살아있는 생명이건 죽어간 생명이건 무생물이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온 우주에 존재하는 거대한 생명으로 환원하는 거대 서사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러한 그의 생명관은 억압 속에서 스러져 간 생명들에 대한 연민과 함께 몇 년전 그를 엄슴한 병마로부터 체득한 생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성찰로 쌀을 통해서 그는 모든 죽어간 생명들과 지금 살아있는 생명들이 함께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할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 김하림 (시인, 미술평론가) 정영창 <쌀의 시간 2>, 2025, 나무문, 창문, 대나무발, 사발, 쌀, 87x92x182cm 정영창 <쌀의 시간 1>, 2025, 창문틀, 목재, 사발, 쌀, 170x150x120cm 3개, 전체 길이 508cm 정영창 <쌀의 시간 1>(부분), 2025, 창문틀, 목재, 사발, 쌀, 170x150x120cm 3개, 전체 길이 508cm 정영창 <씨앗>, 2024, 캔버스에 프린트, 50x50cm 정영창 <쌀>, 2024, 쌀, 오브제, 디지털프린트, 80x60cm 20점 중 부분 정영창 <검은 碑>, 2024, 패널에 쌀, 유화물감, 120x75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