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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토끼 소금, 살아 있는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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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윤리 작성일25-09-18 16:07 조회1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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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연 <기억 지우기>, 2017~25, 소금, 의자, 사용설명서, 책

     

    장미 토끼 소금, 살아 있는 제의

    광주시립미술관 기획전, 2025.08.29-2026.01.25

     

    우리는 예기치 못한 순간, 자연재해나 인재와 같은 재난을 맞이하곤 한다.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위기는 늘 생각지 못한 틈에 다가오고,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순간들이 인생을 통과할 때, 예술은 그 자리에 남아 상실의 감각을 이미지의 풍경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잃어버린 것들의 기억들을 포착하여 이를 염원하기도 하며, 다시 살아나기 위한 몸짓을 표현한다. 이번 전시 장미 토끼 소금_살아 있는 제의는 예고 없이 다가온 재난과 죽음을 마주한 시간, 즉 연속적인 흐름의 삶에 일시적 정지와 단절이 발생한 이후, 삶이 다시 이어지기 위함을 향한 예술, 제의적 예술의 가능성을 화두로 삼았다. 이 전시는 종교적 의례를 뜻하는 제의가 아니라 인간 존재가 세상과 다시 만나는 실천 방식으로 삶과 죽음, 예술과 삶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행위로서의 제의를 현대미술을 통해 다시 불러낸다.

    제의는 개인적 삶에 있어서 중요한 국면을 맞아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나 공동체의 질서에 위험이 처한 특정 문제들에 있어서 신비한 존재와 관계를 맺는 경우의 형식화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무엇보다 제의는 반복성과 형식성을 통해 의미의 순간을 발생시킨다. 이를 통해 기억하고, 마주하는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며 개인과 공동체에게 감정적 회복의 구조를 마련해준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성, 미래의 희망이 한 공간 안에서 겹쳐지는 경험은 단절된 삶의 흐름을 다시 이어 붙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감각과 정서를 나누는 공동체적 연대감을 회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제의는 전통의 재현을 넘어 현재 진행형으로 형식화된 언어로 기능하며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실천이 된다.

    주술 신앙의 일면을 보여준 고대 암각화부터 고분벽화, 탱화, 무신도, 민화 그리고 현대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술의 기원은 제의에서 발생했으며, 제의적 형태와 샤머니즘적 모티브는 예술작품 속에 지속적으로 구현되었다. 예술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현실과 가상을 왕래하며 이들 공간을 이어주는 중재역할을 했으며 특히 상실과 부재 앞에서의 무기력함을 제의적 방식으로 승화시켜 발전되었다.

    재난, 기후위기, 전쟁의 위협 등 자연재해와 인재가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제의는 고통과 상처를 해석하고 치유하며 타자와 교감하려는 예술적 언어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상실을 애도하고, 재난의 흔적을 공유하며, 그 너머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공동체의 제의적 공감의 장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상실과 부재의 흔적 앞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성찰과 함께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마주하며 결국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사유의 시작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참여작가 이수경, 박찬경, 김주연의 작품은 감각과 언어, 몸의 기억을 통해, 다시 삶을 구성하는 방법을 함께 모색한다. 이 전시는 현대 예술 작품 속에 나타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의 흔적을 따라가 보며 제의적 예술의 가능성과 의미를 성찰해 보고자 한다.

    이수경은 도자기 파편을 이어붙이거나, 잊혀진 기억을 수집하고 기록하며 감각적으로 복원하는 제의적 실천을 작품화했다. 작가는 상실과 상처를 예술적 힘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작업의 핵심으로 삼아, ‘부재의 감각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 도자기 파편을 이어붙여 재생을 형상화한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의 작품은 일상, 퍼포먼스, 드로잉을 기반으로 한 회복의 실천으로 확장되었다. 파편화된 조각, 망실된 이야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기억 등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정제된 의식을 환기시키며, 부재의 감각을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이들 작품은 부서진 것들을 붙잡고 남은 기억을 다독이는 제의의 몸짓과 같다. 개인의 내면에 각인된 상실의 흔적을 의례적인 행위로 치환하는 그녀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 개인과 사회, 상처와 회복을 연결하며 존재의 사라짐과 그 흔적을 반복적 조형 언어를 통해 시각화하고 재현한다.

    박찬경은 한국의 전통 종교나 민간 신앙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이중적인 시선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불교 설화와 사찰 벽화를 해석하면서, 각종 위기에 대처하는 제도적, 이념적 대안이 갖는 한계를 넌지시 제시한다. 특히 붓다의 열반을 그린 쌍림열반도는 재난을 이겨낼 희망의 출처를 나타내는 그림으로 보고, 애도의 제의를 고립된 개인들이 공동체를 재건하는 기이한 과정으로 해석한다. 작가가 최근 그린 그림들은 한국 선불교의 설화들을 소재로 현대성이 쉽게 길들일 수 없는 전통-민간-미술의 지혜와 기운을 드러낸다.

    김주연은 개인의 상처, 사회적 기억, 죽음과 생명, 소멸과 탄생의 의례적 순환 구조를 시각화한다. 작가는 동양철학의 개념인 이숙(異熟)’ , 불교철학에서 말하는 모든 존재의 다른 성장, 다른 방식의 성숙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해 왔다. 작가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의 순환 원리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연과 인간의 삶에 공감하며, 그 형태를 식물을 통해 시각화한다. 특히, 일정 기간 동안 식물이 성장하는 과정을 가시화한 그녀의 작업은 인간의 전 생애에 걸친 통과의례를 상징하는 듯하며, 죽음을 소멸이 아닌 생명의 순환 과정 중 하나로 바라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이러한 그녀의 작품은 존재의 지속성과 희망을 제시하며 삶 속에 스며든 상실과 상처의 결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회복의 가능성을 일깨운다.

    전시제목 장미’, ‘토끼’, ‘소금은 각 작가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거나 조연으로 등장하는 상징 언어이다. 이수경의 장미는 속세의 욕망과 의지의 덧없음에 대한 부재의 감각이며 애도 과정의 촉매제이고, 박찬경의 토끼남겨진 개인이나 집단의 상실감을 드러내며, 관객이 현실의 문제에 공감하도록 이끄는 매개체이다.김주연의 소금은 기억과 상처 속에서 정화와 벽사의 의미를 지니며 생명의 회복과 치유의 가능성을 비유한 문화적 경험과 기억 속에 코드화된 상징과 연결된다.

    각기 다른 형식 속에서도 제의적 감각을 담고 있는 세 작가의 작품은 예술이라는 수행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존재와 감각을 공유한다. 이들 작품은 버려진 파편들, 전통 설화로만 남겨 사라져가는 이야기, 퇴색된 기록과 정보의 잔해들, 방치되어 사라져간 것들에게 다시 새 생명을 준다. 이 전시는 뒤늦은 실천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색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모든 존재가 안녕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예술이 던지는 질문이다.

    - 홍윤리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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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연 <수직정원>, 2025, 나무, 흙,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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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연 <Metamorphosis XI>, 2025, 나무파레트, 신문지, 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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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_2017TVBGJW2>, 2017, 도자조각, 스테인레스스틸, 알루미늄바, 에폭시, 24k금박, 203x190x16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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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달빛 왕관_바리의 눈물(부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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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이동식 사원 2024>, 2024, 비단에 석채, 각 160x74cm 6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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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경 <맨발>, 2019, 나무, 기계장치, 50x31x31cm 2개, 40x145x36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박찬경,늦게온보살,2019,HD영화,5.1채널사운드,55'.jpg
    박찬경 <늦게 온 보살>, 2019, HD영화, 5.1채널사운드, 55분
    박찬경,모임,2019,디지털사진,80x80cm26점,국현소장.jpg
    박찬경 <모임>, 2019, 디지털사진, 80x80cm 26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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