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메모리 기획전 ‘기억이 나를 본다’ > 전시비평/리뷰

본문 바로가기

전시비평/리뷰

Home > 남도미술소식 > 전시비평/리뷰
    전시비평/리뷰

    포스트메모리 기획전 ‘기억이 나를 본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은정 작성일25-10-22 11:10 조회14회 댓글0건

    본문

    김설아, 아홉 개의 검은 구멍, 흉흉(Nine Dark Openings, Insidious), Ink on paper, 240cmx450cm, 2022.jpg
    김설아 <아홉 개의 검은 구멍, 흉흉>, 2022, 종이에 잉크, 240x450cm

     

    포스트메모리 기획전 기억이 나를 본다

    2025.9.13-12.14,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잔존하는 이미지의 힘: 기억, 그리고 공감

    잔존(殘存, Nachleben, survivance)’은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 1953~)이 도상해석학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비판하면서 제기한 핵심적인 개념이다. 그는 주류 미술사의 도상해석학이 이미지의 의미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순차적으로 이어져 오는 연대기적 역사 흐름 안에서 고찰해 왔지만, 실제로 이미지의 시간은 일반 역사의 시간과 다르며, 어떤 뚜렷한 좌표와 경계를 가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삶 이후에도 살아남는 것(après-vivre)’이 이미지의 중요한 속성으로서, 이미지 안에서 과거의 존재는 살아남기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지는 시간의 역행, 혼란, 시대에 맞지 않는 갑작스러운 재등장을 통해서 탈영토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이미지는 일시적으로 퇴적되거나 결정화(結晶化)된 운동의 결과이다. 이 운동은 계속해서 여기저기로 횡단하며, 각 운동은 먼 곳에서 출발해서 그 너머로 지속되는 자신만의 (역사학적, 인류학적, 심리학적) 궤적을 갖는다라고 단언했다. (중략)

    2025년 무안군오승우미술관의 기억이 나를 본다(Memories Look at Me)’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디디-위베르만이 지적한 이미지의 잔존성과, 시간의 흐름을 꿰뚫고 흐트러트리는 힘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에 참여한 7명의 작가가 직접 모으거나 만들어낸 이미지는 개인과 집단의 과거 기억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과거의 이미지를 대면한 시점에서 작가가 새롭게 읽어낸 현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이미지 조각들을 모아서 보관했다가 정리하고 재창조하고 배치해서 관람자에게 제시한 일련의 과정들을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대상에서 비롯된 각각의 이미지가 각각의 관람자에게 지극히 사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감성과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양상을 목격하게 된다.

    금혜원<섬호광> 프로젝트에서 관람자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찍힌 빛바래고 구겨진 흑백사진 속 골목과 집안, 장난감, 그리고 동물원과 유원지였던 시절의 창경궁 풍경 이미지, 낡았지만 깔끔하게 보관된 외할머니의 유품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현의 쇼케이스 속에는 쿠바에 살고 있는 한인 후손의 삶을 추적한 2011년도 사진들이 바벨 탑 프로젝트인장과 서명이 찍힌 채로 1960년대 국민교육헌장비 사진, 박정희와 김일성의 기념사진, 한강 개발 구역 항공사진 및 지도 사진 등과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이세현은 영롱한 색채의 프린트 작업을 통해서 2017년의 518민주광장, 2019년의 고성 산불, 목포 신항만에 거치된 2020년 겨울밤의 세월호, 2024년의 무안공항 제주항공 사고, 2025년의 광화문 시위의 장소들을 제시한다. 임흥순의 장편 비디오 영상은 베트남 전쟁의 한국군 학살 생존자와 통역가, 여순 항쟁의 역사학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영매, 남북 분단 현장에서 살아가는 주민들과 문화관광해설사 등 여러 사람의 이야기 타래를 엮어간다.

    김설아의 세밀한 연필 드로잉이 보여주는 대상은 아주 거대하면서도 아주 미세하다. 북극 이누이트들의 설화 속 어머니 신은 아메바나 지네, 또는 거대한 구름이나 바람과 같이 현재 그들의 터전을 덮고 있고, 작가의 어릴 적 고향과 엄마, ‘의 몸과 고통에 대한 기억으로 연결된다. 마리얀토(Maryanto)가 캔버스 천에 아크릴 안료와 목탄으로 그려낸 빽빽한 풀숲 속 검은 파이프와 건축 구조물, 사냥된 짐승의 가죽이나 걸개그림처럼 한껏 당겨진 거대한 천에 펼쳐진 인도네시아의 자연 풍경은 우리나라 관람자들에게 일견 이국적으로 다가오지만, 한 꺼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산업화와 개발 논리로 변형된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리프 부디만(Arief Budiman)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카르타의 19985월과 광주의 19805월을 이미지와 소리로 연결한다. 인도네시아의 부아란 극장과 한국의 광주 극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 영상이 재가공되어 제시되면서 서로 떨어져 있는 아시아의 두 지점과 시점을 가로지르는 지형도가 그려지는 것이다. 7명의 작가는 사진과 인터뷰, 증거 자료 등 표면적으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보이는 매체 자료들을 무기 삼아서 인류의 거대한 역사 속에 관람자의 기억을 심어놓거나, 그리기와 쓰기, 연출하기를 통해서 만들어낸 이미지로 관람자에게 침투해 들어간다.

    개인과 집단의 역사와 기억을 추적하고 재현한 이들의 작업은 영어 pathos 보다는 그리스어 πάθος에 더 가깝다. 파토스는 지속적이고 습관적인 속성인 에토스(ἔθος)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개별 존재에게 일시적으로 일어나서 순간적으로 영혼을 사로잡는 사건이나 그 결과로 일어나는 일시적 정감과 격정을 의미한다. 이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가 오래된 사진의 소소한 세부가 주는 충격이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서 관객에게 다가오는 작용에 대해서 푼크툼(punctum)’이라고 불렀던 것과 흡사하다. 마치 뾰족한 도구에 의해서 구멍난 상처처럼 위의 이미지들은 세상의 전형적인 모습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일상적인 반응을 꿰뚫고 과거와 현재, 역사와 기억, 타인과 나를 연결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아카이브 미술(Archival Art)’은 가장 뜨거운 이슈이자 중요한 화두이다. 기록학에서의 아카이빙 개념과 달리 현대 미술에서의 아카이빙은 주류 미술사와 미술 비평, 역사 서술에서 소외되고 결락된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역사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항 서사 또는 미술 실천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위 7명의 작가가 보여주는 것처럼 미술에서의 아카이빙 작업은 훨씬 더 복합적인 의미와 효과를 보여준다. 이미지는 시간과 지역의 경계를 넘나든다. 또한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정서와 인지에 의해서 이미지의 원형은 끊임없이 변형되지만, 이러한 흐름 안에서도 누군가의 기억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 조은정 (목포대학교 교수)

    이세현, 에피소드_국민이 주인이다, 2025,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프린트, 120cm X 180cm.JPG
    이세현 <에피소드_국민이 주인이다>, 2025,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프린트, 120x180cm
    이세현 에피소드_창문 밖, 2025,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프린트, 120x180cm.jpg
    이세현 <에피소드_창문 밖>, 2025,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프린트, 120x180cm
    나현 아무것도 아닐거야 1, 2025, 혼합재료, 240×110×166㎝.jpg
    나현 <아무것도 아닐거야 1>, 2025, 혼합재료, 240×110×166㎝
    마리얀토 Ojo Adigang Adigung Adiguna, 2021, 캔버스에 Charcoal, 200×300cm.jpg
    마리얀토 <Ojo Adigang Adigung Adiguna>, 2021, 캔버스에 Charcoal, 200×300cm
    임흥순 전망대 영상, 2022, 싱글채널 FHD비디오, 흑백, 스테레오 사운드, 25분36초.jpg
    임흥순 <전망대 영상>, 2022, 싱글채널 FHD비디오, 흑백, 스테레오 사운드, 25분36초
    금혜원 혈압계 2017, 디지털 프린트, 65×54㎝.jpg
    금혜원 <혈압계> 2017, 디지털 프린트, 65×54㎝
    '기억이 나를 본다' 1부 전시실 일부.jpeg
    '기억이 나를 본다' 1부 전시실
    '기억이 나를 본다' 2부 전시실 일부.jpeg
    '기억이 나를 본다' 2부 전시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Copyright 2025 광주미술문화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의 이미지들은 게시자와 협의없이 임의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