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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리자의 콧수염' - 상록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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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0-01-19 18:09 조회10,2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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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리자의 콧수염


    한국 현대미술에서 대중적 이미지나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작년말부터 올해 연초에 걸쳐 열리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이 기획한 ‘모나리자의 콧수염’ 전시인데, 2009년 11월 27일부터 오는 2월 21일까지 농성동 상록전시관에서 계속된다. 전시의 구성은 ‘명화의 재발견’ ‘명품&짝퉁’ ‘스타 이미지’ 등 세가지의 테마로 묶어지며, 고근호 권여현 김동유 양문기 이동재 이승오 이이남 조대원 조윤성 등 9명의 회화ㆍ조각ㆍ미디어 등 5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면서 각기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펼쳐오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비교 감상해 보면서 전시에 담긴 의미들을 읽어볼 수 있다. 가령, 최근 한국 옛 그림과 서양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동영상 같은 정교한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새롭게 재제작하며 국내외 미술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이남은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벽면 가득 대형이미지로 <신-몽유도원도>를 보여주는데, 15c 안견의 몽유도원도 중 도원 부분을 차용하여 도화(桃花)가 만발하고, 숲이 짙푸르러지고, 낙엽이 지고, 눈보라가 뒤덮이는 사계를 한화면 속 영상으로 연결시켜 보여주는가 하면, 강희안의 작품을 차용한 <신-고사관수도>는 바위 절벽 아래 계류에 대기업의 심볼 로고들이 흘러가고 물가 바위에 턱을 고인 선비가 고개를 돌려가며 이를 바라보고 있으며, <신-자화상>은 고흐의 여러 자화상들을 중첩시켜가면서 파이프 연기 속에 고흐의 여러 명화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또한 <겸재정선과 세잔>은 겸재의 수묵산수와 서양 후기인상주의 대표작인 세잔의 생빅트와르산 그림이 오버랩되면서 색채나 터치에서 동서 회화의 차이와 결합을 보여주고, <신-박연폭포>는 겸재의 수묵산수 폭포수에 청록이 물들다 사라지며 색다른 ‘관폭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조각가 조대원은 최근 계속 이어가고 있는 십이지 두상에 사람 몸 형태의 채색목조각들을 <비즈니스>라는 제목으로 전시실 바닥에 가지런히 줄 세워 놓았다. 비즈니스가방을 든 채 악수를 청하며 오른손을 내밀고 있는 각각의 조각상들은 진시황병마용의 복식(실제로 훼손된 병마용처럼 목 없는 상들도 있음)과 현대적 문양과 색채를 결합시킨 듯한 차림새인데, “작품의 모티브는 동양과 서양 문화의 믹스, 글로벌 시대의 현 상태”라면서 “복제화 되고 상품화된 현대문화 속에서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십이지의 수면인신상으로 애니메이션의 친근한 캐릭터 형상으로 리메이크하여 동양과 서양 문화의 믹스와 소통, 글로벌시대의 비즈니스문화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한다.   


    독특한 기호적 패턴으로 현대사회를 비춰내는 조윤성은 <진실게임> <기호적 풍경> <대지의 기원> 연작들을 발표하고 있다. <진실게임> 연작은 삼성, 맥도널드, 코카콜라 심볼로고를 고전적 액자에 넣어 고착된 명품이미지를 박제화시키는가 하면, 아디다스, 푸마, 농협, 오륜기 등을 원색적인 대칭문양으로 반복 배치하여 패턴화된 소비사회를 풍자하고, 루이뷔통, 벤츠, LG 심볼을 단색조 패널 위에 저부조로 올려놓은 <대지의 기원> 연작은 마치 오래된 골동품이나 화석처럼 신화화시키기도 한다. 그의 관심은 “동시대의 환경이 나와 내가 소속된 집단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작품에 제시되는 소재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상징하는 사실의 모습이지만 작가의 아이디어를 통해 지질시대의 화석처럼 시간의 흔적 속에 묻혀버리거나, 화려한 조명 속에 위해하게 포장되고, 조형적으로 재구성되어 새로운 형상으로 제시됨으로써 그 정체를 위협받는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무엇을 진실로 여기는 가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명품 가방들을 돌로 만들어내는 양문기는 그 돌가방들을 조명이 비치는 상자 속에 넣어 위태롭게 <바벨탑>을 구성하였다. 수집한 돌들의 형태에 맞춰 여러 핸드백들을 깎아냈는데, 명품 브랜드들을 정교하게 새겨 넣고 매끄럽게 표면을 연마하면서 부분적으로는 돌 본래의 거친 질감과 색을 그대로 드러내놓기도 한다. ‘돌과 명품이야기’라는 작업노트에서 작가는 “돌가방을 통해 현대사회의 욕망과 물적 속성을 이야기 하고자 했다”한다. 그의 일련의 돌가방 연작들은 “착실한 삶을 꾸려가면서도 문득 일탈을 꿈꾸는 자들의 욕망과 실제 작품의 무게만큼이나 쉽게 떠나지 못하는 그 간절함을 상징하기도 하고, ‘가방끈이 긴 것에 대해 은유되어 부대끼며 서있는 형상으로 제시되거나… 동경의 대상, 성공의 상징으로서 호사품에 대한 이야기를 명품로고가 새겨진 돌가방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현대사회의 일정한 삶의 패턴이나 기호들과의 관계는 고근호의 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마를린 먼로> <마이클 잭슨> <터미네이터> <배트맨과 로빈> <마징가 Z> 등 대중적 인기 캐릭터나 영웅들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컴퓨터로 재단하고 열도색으로 원색을 올리고 조립하여 만든 로봇 같은 철제인물상들이다. 유머와 재치가 넘치면서도 낯익은 이미지들로 호기심과 친근함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업들은 “대중적 아이콘이 갖는 팝적인 요소와 조립 로봇이라는 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의 세계를 결합하여 ‘영웅’이라는 시리즈”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쉽게 허물어질 수 없는 강철 같은 스타들의 우상성과 함께 애완용 장난감 같은 친숙함과 대중성을 결합시킨 작업인 셈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희랑 학예연구사는 “소비문화와 이미지 복제의 시대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차용과 복제가 대유행이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차용과 변용, 재해석은 미술의 가장 중요하고 주된 전략이자 유행하는 창작트랜드로 자리 잡았다”며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선망의 대상이었던 명화, 명품, 스타의 예측불허의 변신을 통해 그것들이 지녔던 본래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작가에 의해 어떤 각색의 과정을 거쳤는지, 어떠한 새로운 생명력을 획득했는지를 비교”해 보면서 “기존 가치관의 번복을 통해 미술에 있어 새로운 창조의 개념과 에너지를 제공한 뒤샹의 ‘모나리자의 콧수염’이 그랬던 것처럼, 설득력이 부족한 차용과 패러디가 범람하는 최근 미술계에 경종을 울리고 발전적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한다.

    - 조인호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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