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미술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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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서양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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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의 시대의식과 현실참여


    현실주의 참여미술의 등장

    한국 현대미술에서 시대를 휩쓴 일대 변혁운동이 있었다. 서구 비정형추상을 전위형식으로 도입하여 진부한 국내 미술판의 풍토변화를 시도했던 `60년 전후의 앵포르멜운동과, 그와 달리 미술계 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제도 모든 부면의 구습과 모순된 역사 현실에 대한 비판 개혁의지로 시대와 함께 뜨겁게 달아올라 여러 풍토변화를 몰고 온 `80년대 사실주의 민족민중미술운동이다. 미술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로써 큰 획을 긋게된 이 집단적 움직임은 자기시대 공동체 삶의 총체적 상황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 실천력을 중시하는 청년미술의 현실주의 정신과 형식의 대결집이었다.

    물론 `70년대 중반부터 뚜렷하게 일기 시작한 문화예술계의 현실직시 또는 시대동참 의식들과 맥을 함께 하며 이 지역에서는 `79년 7월 [광주 자유미술인 협의회](약칭 光自協) 결성으로 처음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강대규 김용채 이영채 홍성담 최익균 등 8인을 창립회원으로 시대모순에 대한 미술의 ‘증언과 발언의 힘’을 모색해 나가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은 탄광촌 탐방과 상호 토론 평가들을 가지면서 이듬해 5월 첫 발표전을 준비하였으나 ‘5.18 광주민중항쟁’으로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항쟁당시 선전요원 등으로 직접 참여 활동하기도 하고 후에 드들강 씻김굿, 선언문 발표, 송정리 야외전 등을 가지며 사실주의 민중미술운동의 주역들로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이들은 `83년부터 [일과 놀이] 시각매체부로 광주카톨릭센터에서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고 판화교실을 운영하며 일반대중들의 미술활동참여와 그 시각매체를 통한 비판정신 시대의식 고양에 힘을 쏟았다. 이듬해 [민중문화연구회]로 재편입한 뒤 `86년 7월에는 [시각매체연구회](시매연)로 재출발하면서 집회현장의 만장과 깃발 걸게그림 벽화제작 등을 도맡아 적극적인 활동을 펴나갔다.

    이 광자협 뿐 아니라 5월의 체험이후 미술의 시대적 책무에 눈뜨기 시작한 작가들의 개별 단체활동들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현실주의 참여미술’ 또는 ‘80년대 오월미술’이라는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어갔다. [2000년 작가회]도 그 한 예로 신경호 조진호 진경우 최익균 홍성담 황재형(후에 박석규 홍순모 가입) 등이 참여하여 `80년 7월 창립전(아카데미)을 가졌다. 또 송창 조진호 등의 [임술년전](`82년 창립,`84년 광주초대전) 참여, `84년 박석규 여운 조진호 진경우 홍성담 홍순모 등의 [해방40년 역사전](5개월 전국순회중 광주 아카데미) 출품, 당국에 의해 강제철거 되었지만 김경주 김진수 이준석 전병근 정희승 등의 [한국미술,20대의 힘전](85,서울 아랍미술관) 참여들이 이어지면서 위축된 `80년대 전반기 문화활동 속에서 일련의 청년미술운동은 꿋꿋이 진행되어 갔다.

    `82~3년 무렵부터, 특히 `85년에 이르러 시대정서와 대중성을 적절히 풀어낼 수 있는 매체로서 목판화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면서 그 전통 미감과 대중선전효과, 흑백의 간결 명쾌함, 전통 모필과도 같은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함께 지닌 칼맛의 표현력을 극대화시켜낸 작품전이 계속되었다. 김경주 이준석 조진호 한희원 등의 [목판화전]과 [김경주 목판화전], [장홍순 조진호 진경우 한희원 4인 판화전] 등이 그 것이다. 아울러 이들이 함께 참여한 20~30대 젊은 작가들의 서울에서 전시들도 [우리시대 30대 기수전], [젊은 세대에 의한 신선한 발언전], [통일전] 같은 전시회 명칭에서부터 문화변동상황을 엿볼 수 있는 시기였다. 또 대학가에서 민화반이나 참여미술을 표방하는 미술패 조직이 이어지는데, [땅끝](`84년 조선대) [불나비](마당,`86년 전남대)도 그 이른 예들이다.

    한편으로 중견작가 가운데서도 후배들의 집단적 운동과는 다르지만 급변하는 시대상황과 그 난맥상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아내는 경우들이 있었다. 가령 훨씬 이전부터 무덤과 식칼 초승달 들개 따위 상징소재를 자주 등장시키며 `80년대에 더욱 날카로운 시대의식을 거듭하는 신경호의 <넋이라도 있고 없고>(`74~) 연작 작업, 5월의 처절한 체험과 좌절 분노를 회백색조와 굵은 붓질로 형상화시켜낸 강연균의 <하늘과 땅사이Ⅰ>(`81)을 비롯한 좌절과 상처의 시대 초상들, 『TIME』지에 실린 신군부 핵심들과 일그러진 시민군들의 얼굴을 대조시키고 망월묘역의 모습을 합성 배열한 <역사의 창-광주여! 망월동이여!>(`81) 등 일련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기록해 낸 손장섭의 시사성 강한 연작 등은 그 대표적 예들이다. 연배와 성향은 다르지만 이들 역시 `80년대에 독특한 사실묘법과 시대정신으로 ‘민족민중적 현실주의’ 작가로서 발판을 확실히 다진 경우이며 이후 남도정서와 역사의식들을 주된 소재로 한 작업들을 거듭해 나갔다.



    '80년대 삶의 현장 속에서 현실주의 미술

    `85년 11월 [민미협], `88년 10월 [민미련 건준위] 발족을 비롯하여 `87년 6월 항쟁을 전후한 `80년대 후반의 정치 사회적 혼돈과 급변하는 국내외 상황, 대학가의 교육개혁운동들 속에서 민중미술진영 또한 이전보다 훨씬 결속력을 강화하며 시민사회운동이나 노동현장 가두집회 등 민중의 거친 숨결과 외침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일정 역할들을 수행해 나갔다. 특히 직접적이고 집단적인 참여형식으로 시의성과 대중적 소통력, 현장성과 실천력을 높이는데 주력하였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을 전후한 시기에 급증한 대형 선전선동용 그림들은 이 시기를 특징짓는 시대산물로 기억될 만 하다.

    예를 들어 전남대 도서관에 걸린 폭 37m 짜리 <오월에서 통일로>(`88), 전국 6개 미술단체 33개 대학미술패가 공동제작한 전체길이 77m짜리 <민족해방운동사>(`89, 광주 금남로3가 거리전)와 광주?전남 대학 미술패 연합이 이철규 장례의식용으로 제작한 <너희를 심판하리라>(`89, 조선대 체육관앞), 조선대 회화과생들이 공동제작한 길이 50m의 걸게그림 <5.18~통일세상>(`90, 미대건물), 전남대학교 참교육민족미술연구회?미술교육학과 학생들이 함께 제작한 길이 50m에 높이 10m의 <오월로 다시 살아와>(`90, 전남대 도서관) 등의 대형 걸게그림과, 전남대 사범대 건물 높이 16m의 <광주민중항쟁도>(1990) 같은 벽화제작에 이르기까지 쓰임새에 따라 크기와 형식을 달리하며 수많은 실내외용 선전미술로서 민중회화를 제공하였다.

    이들 현실주의 청년작가들은 `88년 10월 [광주전남 미술인 공동체](약칭 광미공, 공동대표 조진호 홍성담)를 결성한 뒤 이듬해부터 매년 [오월전]을 가지며 현실주의 미술운동의 연대활동을 펴나가기 시작하였다. 창립당시 선언문에서 ‘5월의 숭고한 정신적 맥락을 딛고 주체적 자아에 눈뜨고 구조적 모순의 질곡을 극복하며...관념적 개인주의적 형식미학적 성향으로 점철되어온 예술지상주의의 척결과 서구지향적 풍토를 극복하고 민중정서의 회복과... 풍성한 삶의 정서들을 공유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 천명하였다. 그리고 회화1?2분과와 조소분과?창작단 같은 분야별 소모임을 통해 실질적인 역할들을 수행하며 망월동이나 금남로 등지에서 가진 오월 정기전 이외에도 [일하는 사람들전]과 각 분과별 발표전들을 정례적으로 가져 왔다. 한편으로 `91년 2월 이전의 시매연에서 재결성된 [광주 민족민중미술운동 연합](약칭 광미련)도 창작분과 아래 회화?조소는 물론 판화?만화만평?인쇄미술?미술이론을, 민중연대위원회에는 선전창작?교육선전단을 두고 ‘광주민중항쟁의 혁명정신을 계승하여 변혁기의 문예전사로서 해방통일의 자주적 민족민중미술 건설에 앞장선다’는 강령으로 선명노선을 강조하며 `90년대 민중미술의 두 축을 이루었다.

    아무튼 `80년대 변혁기 난세의 시대현실 속에서 들불처럼 번져나간 시민사회운동들과 함께 선전선동매체로서 자주성과 민족형식, 시대역할, 대중성 등을 우선하며 집단적 저항의식의 표출과 민중정서의 대변을 도맡았던 이 민족민중미술운동은 시대문화의 한 표본으로 자리매김 받게 되었다. 사실 `80년대 말 소련과 독일 등 사회주의 체제의 잇따른 붕괴와 절대이념의 퇴조, `90년대 군부를 대신한 문민정부 등장 같은 일련의 국내외 상황변화를 맞으면서 활동노선과 표현형식상의 수정 보완이 필연적으로 요구되기도 하였지만 달라진 시대환경 속에서 민중적 삶의 실체와 예술적 감동 서정성을 담아내는 쪽으로 노력들이 진행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김경주 박문종 하성흡(한국화) 이사범 한희원 홍성담(서양화) 나상옥 최광순 이기원(조각) 등 이 시기 활동들을 통하여 자기예술의 뚜렷이 굳힌 작가들의 성장도 주목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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